정자가 활발하게 움직이면 DNA도 건강할까.

남성 난임 검사에서 정자 운동성은 중요한 평가 기준이지만, 정자가 잘 움직인다고 해서 내부의 유전정보까지 건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남성 589명의 정액검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자 DNA 손상이 많을수록 빠르게 전진하는 정자의 비율은 낮아지고 움직이지 않는 정자의 비율은 높아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다만 정자의 운동성과 DNA 손상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이 운동성 검사만으로 DNA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JBRA Assisted Reproduction’에 2026년 발표됐다. 연구진은 정자의 움직임과 DNA 손상 정도를 비교해 기존 정액검사가 남성의 생식능력을 평가하는 데 어떤 한계를 갖는지 살펴봤다.

 

남성 589명 분석…정자 DNA 손상 평균 23.5%

 

연구진은 2021년 8월부터 2024년 2월까지 브라질의 한 남성생식의학 검사기관에서 검사를 받은 18~50세 남성 589명의 자료를 후향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의 핵심은 정자 DNA 분절화(Sperm DNA Fragmentation·SDF)였다. 정자 DNA 분절화란 정자 내부에 들어 있는 유전물질의 가닥이 끊어지거나 손상된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인 정액검사가 정자의 수와 움직임, 형태를 평가한다면 DNA 분절화 검사는 정자 내부 유전정보의 손상 정도를 살펴보는 검사다.

연구진은 정자 염색질 분산검사(Sperm Chromatin Dispersion·SCD)를 이용해 DNA 손상 정도를 측정하고, 세계보건기구(WHO)의 정액검사 기준에 따라 운동성을 평가했다.

전체 남성의 평균 DNA 분절화율은 23.5%였다. 연구진은 DNA 분절화율을 20% 미만, 20~30%, 30% 초과로 구분해 정자 운동성과 어떤 관계가 나타나는지 비교했다.

 

DNA 손상 많을수록 빠르게 움직이는 정자 줄었다

 

분석 결과 정자 DNA 분절화율이 높을수록 빠르게 앞으로 이동하는 정자의 비율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두 지표 사이의 스피어만 상관계수는 -0.289로 나타났으며,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계가 확인됐다(p<0.001). 상관계수가 음수라는 것은 DNA 손상이 많아질수록 빠른 전진운동 정자의 비율이 낮아지는 방향의 관계가 관찰됐다는 의미다.

반대로 DNA 손상이 많은 남성일수록 움직이지 않는 정자의 비율은 높게 나타났다. 정자 DNA가 많이 손상된 남성에게서 정자의 움직임도 좋지 않은 경향이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우연히 나타난 결과일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DNA 분절화율이 20% 이상인 남성은 276명, 20% 미만인 남성은 313명이었다. 두 집단을 비교했을 때 DNA 손상이 높은 집단에서는 빠른 전진운동 정자의 비율이 낮았고, 움직이지 않는 정자의 비율은 높았다.

전체 정액에 포함된 운동성 정자의 수를 의미하는 총운동정자수 역시 DNA 손상이 높은 집단에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정자의 운동 기능과 DNA의 안정성 사이에 일정한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정자가 잘 움직여도 DNA 손상은 있을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자 운동성과 DNA 손상이 서로 관련돼 있지만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정자 운동성은 정자가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DNA 분절화 검사는 정자 내부의 유전정보가 얼마나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두 지표는 서로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상관계수는 정자 운동성과 DNA 손상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 운동성만으로 개별 남성의 DNA 손상 정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정액검사에서 운동성이 정상 범위에 속하더라도 DNA 손상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반대로 운동성이 낮다고 해서 반드시 DNA 분절화율이 높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정자가 잘 움직이는 것과 건강한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구분해서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다.

 

정자 DNA 손상, 수정과 배아 발달에도 영향 줄까

 

정자 DNA 손상이 중요한 이유는 수정 이후의 과정과도 관련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자는 난자에 유전정보를 전달한다. 정자 DNA에 손상이 존재하면 수정 이후 배아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난자는 수정 후 일부 DNA 손상을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정자 DNA가 손상됐다고 해서 반드시 배아 발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기존 연구에서는 높은 정자 DNA 분절화율이 자연임신 가능성 감소, 배아 발달 저하, 유산 위험 증가 등과 연관될 수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실제 영향은 DNA 손상 정도뿐 아니라 난자의 상태, 여성의 나이, 난임 원인, 검사 방법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DNA 분절화율이 높다고 해서 모든 부부의 시험관아기 시술 성공률이 동일하게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브라질 연구 역시 정자 DNA 손상과 운동성의 관계를 분석한 것으로, 시험관아기 시술(IVF)의 수정률이나 배반포 형성률, 임신율, 출산율을 직접 비교한 연구는 아니다.

따라서 이번 결과만으로 DNA 분절화율이 높은 남성의 시험관아기 성공률이 얼마나 낮아지는지 판단할 수는 없다.

 

정액검사 정상인데 임신 안 된다면 DNA 검사 필요할까

 

이번 연구는 남성 난임 평가에서 기존 정액검사와 DNA 분절화 검사가 서로 다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정액검사는 정자 농도와 운동성, 형태 등을 평가하는 기본 검사다. 하지만 이러한 지표만으로 정자 내부의 DNA 손상 여부까지 모두 확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든 남성이 정액검사와 함께 DNA 분절화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자 DNA 분절화 검사는 원인 불명의 난임, 반복 유산, 일부 반복적인 보조생식술 실패 사례 등에서 추가 평가 방법으로 고려될 수 있다. 다만 검사 방법마다 측정 원리와 기준값이 다르고,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 방침을 변경하는 것이 모든 환자의 출산율을 높인다는 근거도 충분하지 않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사용한 DNA 분절화율 20%라는 구분값을 모든 남성에게 적용되는 절대적인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연구가 단일 검사기관에서 수집된 자료를 후향적으로 분석한 관찰연구라는 점도 한계다. 정자 DNA 손상이 운동성 저하를 직접 일으켰는지, 두 현상에 공통으로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남성 난임 검사에서 정자의 움직임과 DNA의 건강 상태를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정액검사 결과를 해석할 때 특정 수치 하나만으로 남성의 생식능력을 판단하기보다 난임 기간과 여성 측 요인, 기존 임신 및 유산 경험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자 DNA 분절화 검사 역시 모든 남성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임상적으로 필요한 경우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정자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정자가 어떤 상태의 유전정보를 전달하는지도 별개의 문제다. 정액검사에서 운동성이 정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자 DNA까지 건강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번 연구가 전하는 핵심이다.

 

※ 2026년 국제학술지 ‘JBRA Assisted Reproduction’에 발표된 정자 DNA 분절화와 운동성 지표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연구진은 브라질 남성 589명의 정액검사 자료를 후향적으로 분석해 정자 DNA 손상과 빠른 전진운동 정자, 비운동 정자 및 총운동정자수 사이의 관계를 평가했습니다. 논문의 디지털객체식별자(DOI)는 10.5935/1518-0557.20260093이며, 원문은 DOI 공식 논문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