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마리아의료재단 마리아플러스(송파) 원장은 건강한 부부라도 자연임신에 성공할 확률이 그리 높지는 않다고 설명한다. 아내의 나이가 35세가 넘었다면 더더욱 낮아진다. 설상가상으로 부부가 같이 살지 못한다면 임신이 힘들어지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집에 부부가 같이 살고 부부관계를 열심히 해도 자연임신이 잘 안될 수 있잖아요.
맞아요. 배란일 때 관계를 맺어도 임신 성공률이 20%밖에 안 됩니다. 건강한 부부가 이틀이 멀다고 잠자리를 한다면 1년 안에 90%가 자연임신을 해요. 10~15%만 임신이 안 되는 거죠. 피임을 안 했는데 결혼 후 2년이 지나도록 임신이 안 된다면 임신능력이 떨어진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수정 장애가 있는지, 나팔관이 막혔는지 등을 추적해봐야 합니다. 젊다는 이유로 넋 놓고 있으면 안 돼요.
정 원장은 여성의 생식학적 환갑을 마흔 살쯤으로 봐야 하지만 보조생식술이 발전해서 시기만 놓쳐서 오지 않는다면 임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다만, 마흔이 넘으면 자궁근종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난자의 질도 떨어질 수 있어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 때문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임신하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자연임신 성공률이 생각보다는 낮군요.
저도 아내가 임신이 안 되어서 한동안 고생을 했어요. 결혼하고 3년간 안 생기더라고요. 제가 수원에서 군의관 하던 시절에 집사람과 서울에 있는 병원에 다녔죠. 고향 부모님 성화에 군의관 한 달 월급을 털어서 한약을 지어 먹기도 했고요. 난임 원인은 다낭성난소증후군이었어요. 배란 장애가 있었던 거죠. 배란을 유도해서 인공수정을 해도 쉽게 안 생기더라고요. IVF도 실패했고요. 하지만 어느 순간 자연 배란이 되어서 자연임신으로 딸을 낳았어요.
-난임 전문의가 직접 난임을 겪은 거네요.
그때는 난임 전문의가 아니었어요. 인턴만 마치고 결혼해서 저도 제대로 알지 못했거든요. 원래는 진단 방사선학을 전공할 생각이었는데 제가 난임으로 마음고생을 하면서 난임 치료에 관심이 생겼어요. 산부인과 레지던트를 하면서도 오로지 난임 치료에만 관심이 가더라고요.
-난임 여성들을 보면 남 일 같지 않겠어요.
여성들이 대단해요. 집사람도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 기도를 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딸에게 “너는 신의 딸”이라고 말해요. 엄마의 기도와 정성으로 낳았다고(웃음).
최근 들어 왜 이렇게 난임 부부가 많아지는 걸까. 정 원장은 “가장 큰 원인은 늦은 결혼이지만 스트레스도 한몫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실 난임 자체만 해도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직장인의 경우 난임 스트레스에 직장 스트레스까지 가중되어 더 힘들 수 있다. 더욱이 직장 내 갈등이나 직장상사로 인한 스트레스는 혈압만 올리는 게 아니라 난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꼬박꼬박 생리하던 여성도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몇 달씩 생리가 사라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법원이 직장생활로 받는 스트레스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겠는가.
-난임일 때 마음고생이 너무 심해지더라고요.
난임 스트레스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의 스트레스와 비슷하다는 보고가 있어요. 난임 자체도 스트레스인데 직장에서 난임을 이해하지 않아서, 휴가를 쉽게 내주지 않아서 더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난임 휴직을 하려면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진단서 내용이 너무 까다로워요. 난임이 해결되려면 몇 달 쉬어야 하는지 개월 수를 적으라는 식으로 돼 있으니 의사로서 참 난감하죠. ‘장기간 안정’이라고 적어서 주긴 하는데…, 난임 휴직은 문서에 얽매이지 않으면 좋겠어요.
-난임을 유발하는 직업이 있나요.
승무원들은 배란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몸매관리나 피부관리가 잘되어 있어서 겉으로는 화사해 보이지만, 고도가 높은 하늘에서 서 있어야 하고 생활이 불규칙하니까 배란 불균형이 될 수 있는 거죠. 또 잦은 비행으로 인해 배란일에 맞춰 남편을 만날 기회가 적잖아요. 여성들은 스트레스가 심하면 배란 장애는 물론이고, 자궁이 수축되거나 나팔관에 경련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임신이 되어도 자궁외임신 비율이 높아져요.
임신 잘되는 여자 & 안 되는 여자
정 원장은 “임신은 남녀가 사랑 후 맞이하는 축복의 열매”라면서도 “임신 성공에 대해 너무 집착해선 안 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또래라도 임신이 너무 잘돼서 골치 아프다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의사의 코치 아래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부가 있다. 난임 전문의로 18년간 15만 명을 만나봤다는 그는 낙천적인 성격이 예민한 성격보다 훨씬 빨리 임신에 성공한다고 귀띔했다.
-임신이 잘 되는 여성이 따로 있을까요.
얼굴만 봐도 대충은 알아요. 대화를 해봐도 느낌이 오고요. 피부가 어둡고 거칠면서 어깨가 너무 떡 벌어진 여성들은 수태력이 떨어질 수 있어요. 아무래도 여성스러워야 임신을 잘하죠. 여드름이 많이 났던 흔적이 있고 음부의 털이 배꼽에서 항문까지 너무 많으면 다낭성난소증후군일 가능성이 커요. 초음파를 통해 더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겠지만 대충 봐도 아는 거죠. 성격도 중요해요. 까칠하고 예민하면 임신이 잘 안 돼요. 초조해하고 긴장을 하면 혈관이 수축되고 자궁 혈류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거든요.
조선 시대 유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에는 슬하에 자식이 있는 유자상(有子相)과 자식이 없는 무자상(無子相)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책에는 월경의 양과 색깔, 월경주기, 여성의 눈동자와 손과 발의 온도, 얼굴 피부색은 물론이고 몸매와 치모의 형태까지 들어가며 무자상과 유자상을 구분했다.
유자상은 어떤 모습일까. 간단하게 ‘눈꼬리가 갸름하되 그 눈 끝이 젖어 있지 않고, 거위나 벼룩 상으로 콧날이 오똑하며, 손바닥이 붉고, 남달리 어깨가 둥글고, 등이 두껍고 배꼽은 깊으며, 엉덩이가 펀펀하고 골반이 쩍 벌어졌으며, 배는 크고, 봉황의 눈처럼 검은 눈동자가 눈꺼풀에 가리지 않는 상’이라고 한다. 반면 무자상(無子相)은 깊은 눈, 말대가리상, 창백한 혓바닥, 털이 많은 콧속, 불붙듯 도드라진 입술이라고 한다. 사실 얼굴과 외모만으로 유자상과 무자상을 가려낸다는 건 어불성설인지 모른다. 결국 자궁과 난소를 봐야 한다.
-얼굴이 다르듯 생식기도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태어날 때부터 자궁이 기형인 경우도 있고, 자궁이 없는 경우도 있어요. 난소의 크기도 사람마다 달라요. 난소가 정상 위치에 있지 않고 자궁 위쪽에 달라붙어 있거나 유착이 생긴 경우도 많죠. 자궁 옆에 있어야 할 난소가 이상한 곳에 가 있는 거예요. 난소와 자궁 위치가 변형되어 있으면 질식 초음파로 봐도 잘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배를 눌러 질 입구와 가까워지게 해서 봐야 해요. 이런 경우에는 IVF에서 난자를 채취하거나 배아 이식 시술을 할 때도 힘들 수 있어요. 물론 시술 경험이 풍부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해낼 수 있지만.
말이 나왔으니 짚고 넘어가자면, 난임 전문의에게 초음파 보기는 매우 중요하다. 직접 초음파를 보면서 난소 상태 등을 파악해서 과배란 주사의 용량을 정해야 하고, 난포가 자라는 반응을 관찰하며 난자를 채취할 디데이(D-day)를 잡는다. 초음파는 2차원으로 본 인체를 머릿속에서 재구성하여 3차원의 입체적인 그림으로 그려내야 하기에 경험이 많을수록 실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평면적 영상을 보면서 머리로 공간까지 다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음파를 잘 보는 비결이 있나요.
경험과 노력이죠. 끊임없이 계속 보면서 노하우를 쌓아야 해요. 이런 환자에게는 어떤 식으로 배란 유도를 하면 되겠다는 감이 와요. 의사가 직접 초음파를 보지 않고 간접적으로 초음파 소견을 듣게 되면 전체적으로 볼 수가 없어요. 초음파를 전문적으로 보는 의사가 봐도 되지만 난임을 치료하는 전문의라면 자기가 직접 보는 게 가장 좋아요.
-난임 전문의가 직접 초음파를 봐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계속 초음파를 보면 환자 개개인의 추세를 알 수 있어요. 이 환자의 난소가 예전에는 어떠했는데 지금은 어떻다는 게 연결이 되는 거죠. 환자의 얼굴은 기억 못 해도 그 여성의 난소 상태가 기억이 나는 거죠. 환자와의 친밀감도 높아지고요.
한배를 타다
IVF의 임신 성공률은 40%에 다다른다. 아무리 체외에서 수정되어 건강한 배아를 고른다고 해도 착상의 비밀은 난임 전문의조차 모르는 부분이 많다. 정 원장은 “열심히 걸으면 임신이 잘 된다”고 강조했다.
-정적인 여성보다는 동적인 여성의 수태률이 훨씬 높다고 하더군요.
그런 편이죠. 실제로 밭에서 일하는 여성이 훨씬 임신이 잘돼요. 햇볕을 쬐면 수태력이 좋아집니다. 늦게 결혼하더라도 몸 관리 잘하고 혈액순환 잘될 정도로 운동하는 여성이 빨리 임신이 됩니다.
-생식기 내 혈액순환 개선을 위해 남성들이 발기부전 치료제로 먹는 비아그라를 처방한다고 들었어요.
자궁내막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비아그라를 질정으로 처방해요. 비아그라를 질정으로 사용하면 난임 여성 자궁의 혈류량을 증가시켜 착상을 돕거든요. 질과 자궁경부 쪽으로 약이 흡수되는 과정을 통해 자궁에 혈이 몰려요. 남성이 비아그라를 복용하면 말초혈관과 정맥이 확장되면서 음경 속에 피가 몰려 발기가 되는 건데, 난임 여성이 비아그라를 질정으로 사용하는 경우, 자궁으로 가는 혈액의 공급이 일시적으로 원활해져서 착상에 도움이 되는 거죠.
최근 난임 전문의료기관들은 만혼과 재혼으로 인한 고령 환자가 많아져서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과배란 주사를 고용량으로 투여해도 난자가 자라지 않는 난소기능 저하를 겪는 여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기적이 없는 건 아니다.
-난임 전문의에게 가장 난제가 난소기능 저하라고 들었어요.
난소가 거의 폐경 수준인 분이 있었어요. 과배란 주사를 아무리 많이 맞아도 난자가 1개 겨우 자라거나 아예 안 자랐어요. 그러다 어느 도전에서 난자가 3개 자라더라고요. 그 난자로 결국 임신했어요. 난소기능이 너무 떨어져서 배아를 3개 이식했는데, 세쌍둥이를 임신한 거예요. 정말, 자식과의 인연에는 의사가 모르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그야말로 신의 영역이 있는 것 같아요. 몇 년 전, 50대 여성이 임신했을 때 의사인 저도 믿어지지 않았죠.
정 원장은 생김새나 성품이 결코 상냥하거나 보드라워 보이진 않았다. 다소 무뚝뚝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집요한 구석이 있어 보였고 자신감 있는 말투였다.
-스스로 어떤 의사라고 생각하나요.
전 빨리빨리 스타일입니다. 낙관하며 허송세월 보내다가 가임 능력을 다 잃을 수 있거든요. 또 무조건 희망적으로 좋게 말하지 않아요. 바른 소리를 하니까 무섭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저는 ‘한 여성의 임신은 한 가정을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와 환자는 이미 한배를 탔어요. 이유를 불문하고 믿고 따라와 주면 좋겠어요. 세상 최고의 난임 전문 명의는 결국 나를 임신시켜주는 의사 아니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