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아기시술(IVF)을 준비하는 난소기능 저하(DOR) 환자들 가운데 특히 난소 예비력이 매우 낮은 ‘극난저’ 환자들은 “조금이라도 임신 가능성을 높일 방법이 없을까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
AMH 수치가 극도로 낮거나 이전 시술에서 난자가 한두 개밖에 채취되지 않은 여성, 반복적으로 배아가 만들어지지 않던 여성들에게는 난자 하나가 곧 임신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은 가능성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환자들에게 일부 난임 전문의들이 선택하는 보조 치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장호르몬(Growth Hormone, GH)이다. 이름만 들으면 키를 크게 하는 주사로 생각하기 쉽지만, 난임 치료에서 사용하는 성장호르몬은 전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성장호르몬은 뇌 아래쪽에 있는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어린 시절에는 키와 뼈, 근육의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단백질 합성, 지방 대사, 세포 재생, 조직 회복 등 우리 몸의 다양한 기능에 관여한다.
특히 성장호르몬은 간에서 인슐린유사성장인자-1(IGF-1)의 생성을 촉진하는데, 이 물질은 여러 조직의 성장과 회복을 돕는 핵심 인자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난소에도 성장호르몬과 IGF-1의 수용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성장호르몬이 난포의 성장과 난자의 성숙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잇따르고 있다.
많은 환자들이 “성장호르몬을 맞으면 난자가 더 많이 생기나요?”라고 묻지만 답은 그렇지 않다.
여성은 태어날 때 평생 사용할 난자를 모두 가지고 태어나며 현재 의학으로 새로운 난자를 만들어내는 치료는 불가능하다. 성장호르몬 역시 난자를 새롭게 생성하거나 난소를 젊게 만드는 약은 아니다.
대신 남아 있는 난자가 보다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기대하는 치료다. 다시 말해 난자를 키우는 주사가 아니라 난자가 자라는 토양을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치료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다.
난포 안에는 난자를 둘러싸고 영양분과 신호를 전달하는 과립막세포가 존재한다.
성장호르몬은 이 세포들의 기능을 활성화하고 난포가 난포자극호르몬(FSH)에 더욱 잘 반응하도록 도와 난자의 성숙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난자의 에너지 생산을 담당하는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개선하고 산화 스트레스를 줄여 세포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도 발표되고 있다. 결국 성장호르몬은 난자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난자의 ‘품질 관리’를 돕는 전략에 가깝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성장호르몬을 함께 사용한 극난저 환자에서 성숙 난자의 비율이 증가하고 수정률과 양질의 배아 형성률이 향상됐으며 배아 이식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늘었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반복적으로 채취되는 난자가 적거나 배아가 중간에 발달을 멈추던 환자에서 이전보다 좋은 결과를 경험했다는 연구도 적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성장호르몬은 특히 반복적인 저반응 환자나 고령 난임 환자에서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성장호르몬을 만능 치료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현재까지 발표된 연구들을 종합하면 일부 환자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모든 환자에게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연구마다 대상 환자의 나이와 난소기능, 사용한 용량과 투여 기간이 달라 결과도 일정하지 않다. 어떤 연구에서는 임신율과 출산율이 높아졌다고 보고한 반면 다른 연구에서는 의미 있는 차이를 확인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서 유럽생식의학회(ESHRE)와 미국생식의학회(ASRM)는 성장호르몬을 모든 난임 환자에게 권장하는 표준 치료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으며, 반복적으로 난소 반응이 매우 낮은 환자에서 전문의의 판단 아래 선택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보조 치료로 보고 있다.
극난저 환자에게 난자 한 개는 단순한 세포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향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그렇기에 성장호르몬은 기적을 만드는 약이라기보다 그 소중한 난자 한 개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에 가깝다.
난자를 새롭게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남아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키우기 위한 의학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성장호르몬에 과도한 기대를 갖기보다 자신의 나이와 난소 상태, 이전 시술 결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 경험이 풍부한 난임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해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난임 치료는 하나의 약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전략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성장호르몬 역시 그 전략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