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난임 검사를 하다 보면 적지 않게 발견되는 것이 정계정맥류다.
정계정맥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부부에게는 곧바로 고민이 생긴다. 수술로 정계정맥류를 교정한 뒤 자연임신을 시도해야 할까. 아니면 시간을 아끼기 위해 바로 시험관아기시술(IVF)을 시작하는 편이 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무조건 수술하는 것도, 반대로 모두 곧바로 IVF로 가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정계정맥류의 정도와 정액검사 결과뿐 아니라 여성의 나이와 난소예비력까지 함께 봐야 한다.
고환 온도 높여 정자에 영향
정계정맥류는 쉽게 말하면 고환 주변 정맥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 혈액이 고이는 상태다. 다리의 하지정맥류와 비슷한 원리다.
고환에서 올라가는 정맥에는 혈액이 거꾸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판막이 있는데 이 기능이 충분하지 않거나 정맥의 해부학적 구조 때문에 혈액이 역류하면 고환 주변 정맥이 늘어난다.
특히 왼쪽 고환정맥은 해부학적으로 혈액이 정체되기 쉬워 정계정맥류의 대부분이 왼쪽에서 발생한다. 미국비뇨기과학회(AUA)에 따르면 정계정맥류는 전체 성인 남성의 약 15%, 난임 남성에서는 약 40%에서 발견된다.
문제는 고환이 정자를 만드는 데 적정한 온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상적으로 고환은 체온보다 약간 낮은 환경을 유지한다. 하지만 정맥혈이 고환 주변에 정체되면 고환 온도가 올라가고 산소 공급 저하와 산화스트레스가 증가할 수 있다. 이 과정이 장기간 이어지면 정자 수와 운동성, 형태뿐 아니라 정자 DNA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현재의 설명이다.
초음파로 보인다고 모두 수술은 아냐
그렇다고 초음파에서 정계정맥류가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교정술을 받을 필요는 없다.
현재 AUA·미국생식의학회(ASRM)는 임신을 원하는 남성에게 손으로 만져지는 임상적 정계정맥류가 있고, 부부가 난임 상태이며, 정액검사까지 비정상인 경우 정계정맥류 교정술을 고려하도록 권고한다. 반대로 초음파에서만 발견되는 작은 ‘잠복성 정계정맥류’는 일상적인 수술 대상으로 권하지 않는다.
유럽비뇨기과학회(EAU)의 판단도 비슷하다. 임상적 정계정맥류가 있으면서 정액검사가 비정상이고 다른 뚜렷한 난임 원인이 없는 남성에서는 교정술이 임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여성의 난소예비력이 충분한 부부라면 수술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권고한다.
수술 뒤 정자 개선엔 수개월 걸려
그렇다면 수술을 하면 자연임신이 바로 가능해질까.
여기에는 ‘시간’이라는 변수가 있다. 정자는 만들어져 성숙하기까지 약 3개월이 걸린다. 정계정맥류를 교정했다고 다음 달부터 정액검사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연구들을 보면 수술 후 정액 지표의 개선은 대체로 수개월에 걸쳐 나타나며 자연임신은 주로 수술 후 6~12개월 사이에 관찰된다.
따라서 여성의 나이가 비교적 젊고 난소예비력이 충분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남성에게 뚜렷한 정계정맥류가 있고 정자 수나 운동성이 떨어져 있다면 먼저 교정술을 시행하고 수개월간 자연임신을 시도해보는 전략이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 연구에서도 교정술을 받은 남성에서 치료하지 않은 경우보다 자연임신 가능성이 증가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다만 연구마다 대상과 수술법이 달라 수술만 하면 임신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여성의 ‘임신할 시간’이 더 중요할 수도
반대로 여성의 나이가 30대 후반이나 40대에 접어들었거나 AMH가 낮고 확보할 수 있는 난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면 판단은 달라져야 한다.
정계정맥류 수술 후 정자가 좋아지기를 6개월 또는 1년 기다리는 동안 여성의 난소 기능은 계속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의 정자 상태는 수술로 개선될 가능성이 있지만 여성의 난소 노화는 치료로 되돌리기 어렵다. EAU 역시 정계정맥류 치료와 보조생식술(ART) 사이에서 결정할 때 여성의 연령과 난소 예비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부부에서는 ‘정계정맥류부터 고치고 자연임신을 기다린다’는 순차적인 접근보다 IVF 또는 ICSI를 먼저 시작하거나 정계정맥류 치료와 난임치료를 병행하는 방법이 현실적일 수 있다.
심한 남성요인이면 IVF·ICSI도 고려
또 정자 수가 극도로 적거나 운동성이 매우 낮아 자연수정 자체가 어려운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이때는 정계정맥류 교정술이 정자의 질을 개선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자연임신만을 목표로 수개월을 기다리기보다는 IVF, 특히 난자 안에 정자 한 개를 직접 주입하는 세포질내정자주입술(ICSI)을 선택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정계정맥류 교정이 반드시 ‘자연임신을 위한 수술’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메타분석에서는 정계정맥류 교정 후 IVF·ICSI 등 보조생식술을 받은 남성에서도 교정하지 않은 군보다 임상적 임신율이 높게 나타났다. 다만 포함된 연구 대부분이 후향적 연구여서 이를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정도의 확정적인 근거로 보기는 어렵다.
결국 정계정맥류가 발견됐을 때 질문은 단순히 ‘수술이냐 IVF냐’가 아니다.
남성에게 실제로 만져지는 정계정맥류가 있는가, 정자 수와 운동성은 어느 정도인가, 정자 상태가 자연임신을 기대할 수준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에게 몇 개월을 기다릴 시간이 있는가를 함께 따져야 한다.
여성의 나이가 젊고 난소 예비력이 충분하다면 정계정맥류 교정 → 정액검사 변화 확인 → 자연임신 시도라는 순서가 합리적일 수 있다. 반면 여성의 생식 시간이 촉박하거나 심한 남성 요인이 동반돼 있다면 정계정맥류 하나를 치료하기 위해 IVF 시점을 늦추는 것이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다.
정계정맥류는 고칠 수 있는 남성 난임 원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난임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정맥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부부에게 남아 있는 ‘임신할 시간’까지 함께 계산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