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ChatGPT, OpenAI)을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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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아기시술(IVF)에서 난자 하나에 들어갈 정자는 단 한 마리다. 그런데 한 번 사정한 정액에는 수천만 마리의 정자가 들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정자 가운데 난자에 넣을 ‘한 마리’는 어떻게 고를까. 특히 난자 안에 정자 한 마리를 직접 넣는 세포질내정자주입술(ICSI)을 한다면 ‘어떤 정자를 골라 넣느냐’가 더욱 중요해 보인다.

2026년 6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무작위 연구가 이 질문을 파고들었다. 연구진은 기존의 밀도구배 원심분리(DGC)와 최근 주목받는 미세유체 정자선별(MSS)을 직접 비교했다. 쉽게 말하면 정자를 ‘돌려서 고르는 방법’과 ‘스스로 헤엄쳐 나오게 해서 고르는 방법’을 맞붙인 것이다.

 

정자를 돌리지 않고 ‘헤엄치게’ 해서 고른다

 

시험관아기 시술에서 정액을 채취했다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정액 속에는 잘 움직이는 정자와 그렇지 못한 정자, 죽은 정자와 여러 불순물이 섞여 있기 때문에 시술에 사용할 정자를 골라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난임병원에서 널리 사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밀도구배 원심분리다. 밀도가 다른 용액을 층층이 만든 뒤 정액을 넣고 빠르게 회전시켜 상태가 비교적 좋은 정자를 분리한다.

오랫동안 사용돼 온 방법이지만 의문도 있었다. 정자를 빠르게 회전시키고 여러 차례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물리적·산화적 스트레스를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발상을 바꾼 것이 미세유체 정자선별이다. 정자를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리는 대신 아주 작은 통로를 만들어 놓고 운동성이 좋은 정자가 스스로 헤엄쳐 통과하도록 한다. 쉽게 말해 정자를 억지로 분리하기보다 ‘잘 헤엄치는 정자가 결승선까지 스스로 오게 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른 정자가 실제로 더 좋은 결과를 만들까.

이번 연구가 재미있는 것은 비교 방법이다. 연구진은 정액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있는 남성이 포함된 55쌍의 부부를 모집했는데, 55쌍을 미세유체군과 원심분리군으로 나누지 않았다. 대신 한 여성에게서 얻은 성숙난자를 둘로 나눴다. 절반에는 미세유체 방식으로 고른 정자를 넣고, 나머지 절반에는 기존 원심분리 방식으로 준비한 정자를 넣어 모두 세포질내정자주입술(ICSI)을 시행했다.

이른바 ‘형제난자(sibling-oocyte)’ 비교다. 서로 다른 여성의 난자를 비교하면 나이와 난소기능, 난자의 상태 등 수많은 변수가 끼어든다. 하지만 같은 여성에게서 같은 날 얻은 난자를 나누면 이런 차이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결국 ‘정자를 고르는 방법만 달라졌을 때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기 좋은 실험인 셈이다.

 

첫 승부는 미세유체 정자선별이 앞섰다

 

첫 번째 결과는 수정률이었다. 정상적으로 수정돼 두 개의 전핵(2PN)이 확인된 비율은 미세유체 정자선별군 82.3%, 기존 원심분리군 74.7%였다. 7.6%포인트 차이다. 통계적으로도 의미 있는 차이가 확인됐다.

선별된 정자의 특징도 달랐다. 미세유체 방식에서는 최종적으로 얻은 정자의 농도와 전체 운동정자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선별된 정자의 전체 운동성과 앞으로 똑바로 나아가는 전진운동성은 더 높았다. 많은 정자를 건져내기보다는 ‘잘 헤엄치는 정자를 추려내는 데’ 강점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답은 간단해 보인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자를 원심분리하지 말고 미세유체 방식으로 고르면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배아를 조금 더 키워보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수정은 더 잘됐는데…배반포에서는 차이가 사라졌다

 

수정된 배아가 분열하기 시작한 비율은 미세유체군 97.6%, 원심분리군 96.9%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배아가 자라 배반포가 된 비율도 미세유체군 61.8%, 원심분리군 65.2%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좋은 등급의 배반포가 만들어지는 비율 역시 두 방법 사이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첫 관문인 수정에서는 미세유체 정자선별이 앞섰지만 배아를 계속 키워보니 그 우위가 이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잘 움직이는 정자를 골랐다’와 ‘좋은 배아가 만들어졌다’는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정상염색체 배아는 더 많았을까

 

시험관아기 시술(IVF)을 하는 환자라면 한 가지가 더 궁금하다. ‘그렇다면 정상염색체 배아는 더 많이 나왔을까.’

55주기 가운데 47주기에서는 착상전배아염색체검사(PGT-A)가 시행됐다. 검사한 배반포 가운데 정상염색체 배아(euploid embryo)의 비율은 미세유체군 35.8%, 기존 원심분리군 24.8%였다. 숫자만 놓고 보면 11%포인트 차이라 눈길을 끈다.

그러나 여기서 ‘미세유체 방식이 정상염색체 배아를 더 많이 만든다’고 결론 내리면 안 된다.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 규모가 커지면 실제 차이가 확인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번에 나타난 숫자 차이가 우연이었던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답이 나오지 않은 문제다.

 

‘잘 헤엄치는 정자=좋은 배아’는 아니었다

 

이번 연구가 던지는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하다.

IVF에서 말하는 ‘좋은 정자’는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이다. 현미경에서 잘 움직이는 정자가 있고, 난자를 잘 수정시키는 정자가 있다. 수정 후 좋은 배아로 자라는 데 기여하는 정자가 있고, 결국 착상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정자가 있다. 이 모든 조건을 한 마리의 정자가 반드시 갖추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세유체 정자선별은 ‘수정’이라는 첫 관문에서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수정률은 82.3%로 기존 원심분리 방식의 74.7%보다 높았다. 그러나 더 많은 좋은 배반포를 만들거나 정상염색체 배아를 늘리고, 궁극적으로 임신과 출산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까지 증명한 연구는 아니다.

연구 대상이 55쌍으로 많지 않았다는 한계도 있다. 특히 정액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있는 남성이 포함된 연구였기 때문에 정액검사가 정상인 남성을 포함한 모든 시험관아기 시술 환자에게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고 볼 수도 없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는 착상률이나 임신율, 최종 생아출산율을 비교하도록 설계된 연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분명하다.

수천만 마리의 정자 가운데 난자에 들어갈 단 한 마리를 고르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자를 ‘돌려서’ 골랐다면 이제는 정자가 스스로 ‘헤엄쳐 나오게’ 해서 고르는 방법이 등장했다. 그리고 같은 여성의 난자를 반으로 나눠 맞붙여보니 수정률에서는 82.3% 대 74.7%로 미세유체 방식이 앞섰다.

다만 진짜 승부는 그다음이다. 그렇게 고른 정자가 좋은 배아를 만들고, 배아가 착상하고, 임신을 유지해 결국 건강한 아이의 출생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미세유체 정자선별은 긴 시험관아기 과정 가운데 ‘수정’이라는 첫 관문에서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제 확인해야 할 것은 그 차이가 마지막 관문인 ‘출산’까지 살아남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