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비만은 정자 건강과 생식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체중을 크게 줄이면 정자의 질도 좋아질까. 최근 미국 연구진이 고도비만 남성의 체중 감량 수술 전후를 분석한 결과, 체중이 평균 24% 감소하고 남성호르몬 수치가 높아졌음에도 정자 수와 운동성에서는 뚜렷한 개선이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정자를 둘러싼 정액 속 단백질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가 확인됐다.

이번 연구는 남성의 생식능력을 평가할 때 정자의 수와 움직임뿐 아니라 정자가 수정 능력을 갖추는 데 관여하는 생화학적 환경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자 수·운동성 변화는 미미

 

미국 피츠버그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고도비만 남성 6명을 대상으로 체중 감량 수술 전과 수술 후 3개월, 6개월의 변화를 추적했다. 정상 체중 남성 6명의 검사 결과도 비교 자료로 활용했다.

수술을 받은 남성들의 평균 체질량지수(BMI)는 51.2로, 심한 비만 상태였다. 연구진은 위우회술 이후 체중과 남성호르몬 수치, 정액검사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수술 후 3개월에는 체중이 평균 21%, 6개월에는 24% 감소했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도 높아졌다. 수술 후 3개월에는 평균 407.7ng/dL, 6개월에는 511.5ng/dL로 증가했다.

그러나 정액검사 결과는 달랐다. 정액량과 정자 농도, 운동성, 정상 형태 정자 비율 등 주요 지표에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개선이 확인되지 않았다.

체중이 크게 줄고 남성호르몬 수치가 높아졌다고 해서 정자의 질까지 단기간에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정액 속 단백질에서 변화 발견

 

연구진은 일반적인 정액검사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변화를 찾기 위해 정자와 정액 속 단백질을 정밀 분석했다.

정액은 정자와 이를 둘러싼 액체 성분으로 구성된다. 정자는 정액의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정낭과 전립선 등에서 분비되는 액체다. 이 액체에는 정자를 보호하고 이동을 돕거나 수정 준비 과정에 관여하는 다양한 단백질이 포함돼 있다.

연구진은 특히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하는 '인산화'라는 현상에 주목했다. 인산화는 단백질에 특정 화학물질이 결합하면서 단백질의 작용이 조절되는 과정이다. 정자가 움직이고 난자와 결합할 준비를 하는 데도 이러한 변화가 관여한다.

분석 결과 정자 자체의 단백질에서는 뚜렷한 변화가 확인되지 않았다. 반면 정액의 액체 성분에서는 수술 전후 7개의 단백질 유래 인산화 펩타이드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정자의 운동과 수정 준비 과정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단백질에서도 변화가 관찰됐다.

이는 체중 감량에 따른 생식기능 관련 변화가 일반적인 정액검사 수치보다 정자를 둘러싼 생화학적 환경에서 먼저 드러날 가능성을 시사한다.

 

정자 수 정상이어도 수정능력은 다를 수 있어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부분은 정자가 난자를 수정할 수 있는 상태로 변화하는 과정과 관련된 단백질이다.

정자는 만들어진 직후부터 난자를 수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 생식기관에 들어간 뒤 여러 생리적 변화를 거쳐야 난자와 결합하고 난자를 둘러싼 보호막을 통과할 수 있다. 이를 ‘정자 수정능 획득’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는 정자의 움직임과 세포막 성질이 달라지고, 수정에 필요한 기능이 활성화된다.

연구에서 변화가 관찰된 에이케이에이피3(AKAP3)와 에이케이에이피4(AKAP4)는 정자의 운동과 수정 준비 과정에 관여하는 단백질이다. 세메노겔린-1(SEMG1) 역시 정액의 응고와 액화, 정자의 기능 조절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체중 감소에 따른 대사 환경의 변화가 이러한 단백질의 작용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다만 단백질의 변화가 실제 수정능력 향상으로 이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수정률이나 임신율을 직접 비교한 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 난임, 정자 수와 운동성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워

 

현재 남성 난임을 평가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정액검사다. 정자의 수와 운동성, 형태 등을 확인해 생식능력을 판단한다.

하지만 정액검사 결과가 정상이라고 해서 반드시 임신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일부 수치가 정상 범위보다 낮더라도 자연임신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이는 정자의 수와 움직임 외에도 수정 과정에 관여하는 여러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를 제시한다. 비만으로 인한 대사 이상이나 체중 감소가 정자의 외형과 운동성에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더라도, 수정 과정과 관련된 단백질에는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액 속 단백질의 변화는 향후 남성 생식기능을 보다 정밀하게 평가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실제 난임 진단에 적용하려면 단백질 변화와 수정률, 임신율, 생아출산율 사이의 관계를 확인하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체중 감량이 곧 남성 난임 치료 효과를 의미하지는 않아

 

이번 연구는 체중 감소가 남성의 생식기능과 관련된 생화학적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연구 대상이 고도비만 남성 6명으로 적고, 추적 기간도 6개월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연구 대상자들은 체중 감량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관찰된 변화가 체중 감소 자체의 영향인지, 수술 이후 영양 상태와 대사 환경 변화에 따른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특히 기존에 난임을 진단받지 않은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라는 점에서 이번 결과를 난임 남성 전체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체중 감량 수술이 남성 난임을 개선하는 치료법이라고 결론 내릴 근거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남성의 생식능력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남성의 생식능력은 단순히 정자가 얼마나 많고 빠르게 움직이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정자가 난자를 만나 수정에 이르기까지는 호르몬과 대사 상태, 정액 속 단백질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번 연구는 체중을 크게 줄여도 정액검사 수치가 곧바로 개선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정자를 둘러싼 생화학적 환경에서는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앞으로 이러한 단백질 변화가 실제 정자의 수정능력과 임신 성공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연구 과제로 남았다.

 

※ 미국 피츠버그대학교(University of Pittsburgh)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엔도크리놀로지(Frontiers in Endocrinology)’에 2026년 10월 7일 발표한 논문 '비만대사수술 후 상당한 체중 감소가 인간 정액 내 인산화 펩타이드의 차등 발현에 미치는 영향(The impact of significant weight loss following bariatric surgery on the differential expression of phosphopeptides in human seminal fluid)'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논문 DOI는 10.3389/fendo.2026.1907857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