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아기시술(IVF)에서 좋은 배아를 만들려면 좋은 배양실이 중요하다. 배양기의 온도와 산소·이산화탄소 농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하고 배양액의 품질도 좋아야 한다. 공기질과 빛, 진동까지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난임병원을 선택할 때 ‘배양실 시설이 좋은가’를 따지는 환자가 많다.
그런데 배아의 운명을 결정하는 배양실에는 최첨단 장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장비 앞에는 난자와 정자, 배아를 직접 다루는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배양연구원(embryologist)이다.
같은 시설과 같은 배양액, 같은 장비를 사용하더라도 배양연구원의 경험과 숙련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얼마나 침착하고 꼼꼼하게 일하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숨기지 않고 동료와 소통하는지 등 이른바 ‘인적 요인(human factor)’의 중요성도 주목받고 있다.
배아배양실은 ‘기계가 알아서 배아를 키우는 곳’이 아니다
환자에게 배아배양실은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채취한 난자와 정자를 배양기에 넣어두면 며칠 뒤 배아가 만들어져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실제 과정은 훨씬 복잡하다.
채취된 난자를 찾아 성숙도를 확인하고 정자를 처리한다. 수정 여부를 판독하고 배아가 제대로 분열하고 있는지도 살핀다. 세포질내정자주입술(ICSI)을 한다면 현미경을 보면서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느다란 미세주입침을 움직여 정자 한 개를 난자 안에 직접 넣어야 한다.
배아를 동결하고 해동하는 과정에도 사람의 손이 들어간다. 착상 전 유전검사(PGT)를 한다면 배반포에서 세포 몇 개를 떼어내는 배아생검도 해야 한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고도의 미세조작과 판단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간인 셈이다.
2026년 유럽생식의학회(ESHRE)가 개정한 ‘IVF 배양실 우수실무 권고’가 배양실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인력’을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ESHRE는 모든 시술을 적절한 훈련을 받은 숙련된 연구원이 표준작업절차(SOP)에 따라 시행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신입 연구원 역시 숙련된 배양연구원의 감독 아래 체계적으로 훈련받도록 했다.
난자 찾기부터 미세수정까지 배양연구원의 숙련된 눈과 손은 중요하다.
배양연구원의 숙련도 차이는 배양 과정 곳곳에서 드러날 수 있다. 난자채취 직후에는 의사가 뽑아낸 난포액 속에서 난자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야 한다. 난자는 맨눈으로 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현미경 아래에서 난구세포에 둘러싸인 난자-난구복합체를 찾아 분리한다. 경험이 부족하면 찾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난자를 다루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을 수 있다.
정자를 선별할 때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정자 가운데 운동성과 형태를 살펴 한 개를 골라야 한다.
정자와 난자를 강제로 수정시키는 세포질내정자주입술(ICSI)에서는 미세주입침으로 난자막을 통과해 정자를 정확하게 넣어야 한다. 지나친 힘이나 미숙한 조작은 난자 손상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이후 수정 여부 확인, 배아의 체외배양과 관찰, 배양액 교체, 배아 이동, 동결과 해동까지 작은 조작이 계속된다. 결국 배양연구원의 경험은 단순히 ‘몇 년 근무했느냐’가 아니라 난자와 정자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다루고 순간순간 정확하게 판단하느냐에 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경험 적은 연구원이 ICSI 했더니 수정률 낮았다.
‘누가 하느냐’가 실제 결과에도 영향을 줄까.
이를 보여준 대규모 연구가 있다.
미국 연구진이 한 대형 난임센터에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시행된 세포질내정자주입술(ICSI) 1만4362건을 분석했다. 한 환자에게서 얻은 난자를 두 명의 배양연구원이 나눠 ICSI를 시행한 경우를 이용해 연구원의 경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지를 살펴봤다.
차이가 나타났다.
ICSI 경험이 가장 적은 배양연구원이 시술했을 때 평균 수정률이 낮았고, 수정이 하나도 되지 않는 ‘수정 실패’ 위험은 더 높았다. 경험이 가장 적은 연구원이 시술한 경우 수정이 전혀 되지 않을 보정 오즈(odds)는 4.3배였다.
수정된 난자 가운데 사용 가능한 배반포로 발달하는 전체 비율에서는 연구원 경험에 따른 뚜렷한 차이가 없었지만, 사용할 수 있는 배반포를 하나도 얻지 못할 위험 역시 경험이 가장 적은 연구원에서 높았다.
연구원이 가진 ‘경험의 양’이 실제 IVF 과정의 결과와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경험만 많으면 충분할까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배양연구원이 10년을 일했다고 해서 모든 연구원이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변화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한 번 더 확인한다. 반복되는 작업에서도 순서를 생략하지 않는다. 반대로 경험이 많아질수록 익숙함 때문에 확인 절차를 무심코 지나칠 가능성도 있다.
배아배양실에서 이런 차이는 단순한 ‘성격 차이’로 끝나지 않는다.
환자의 난자와 정자, 배아는 일반적인 실험실 샘플과 다르다. 검체가 바뀌어서도 안 되고, 동결 위치를 착각해서도 안 된다. ICSI나 배아생검처럼 현미경 아래에서 수행하는 미세조작에서는 집중력과 손의 안정성도 중요하다.
따라서 꼼꼼함, 침착함, 집중력, 반복적인 절차를 정확하게 수행하는 성향,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지 않고 다시 확인하는 습관은 배아배양실에서는 하나의 업무 능력이 될 수 있다.
다만 여기에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현재까지 ‘특정 성격을 가진 배양연구원이 임신율이나 출산율을 높인다’는 사실이 직접 입증된 것은 아니다. MBTI처럼 특정 성격 유형과 배아 발달률을 연결할 근거도 없다.
중요한 것은 성격 그 자체라기보다 그 사람의 성향이 실제 업무에서 어떤 행동으로 나타나느냐다.
‘실수를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좋은 배양연구원의 조건
2026년 유럽생식의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도 발표됐다.
유럽과 미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배아배양연구원 331명을 대상으로 ‘심리적 안전성(psychological safety)’을 조사했다.
심리적 안전성이란 간단히 말하면 ‘내가 뭔가 잘못했거나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때 비난받을 걱정 없이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조사에서는 배양연구원의 심리적 안전성이 중간 수준으로 나타났으며 지역과 경험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특히 리더가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건설적인 피드백을 장려하는지가 심리적 안전성과 밀접하게 관련됐다.
이 연구는 설문조사이자 학술대회 발표 자료이기 때문에 심리적 안전성이 배반포 형성률이나 임신·출산율을 직접 높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배아배양실에서 왜 ‘사람의 성향과 문화’가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혼자 판단하는 연구원과 ‘이상하다. 같이 한번 확인해보자’고 동료를 부르는 연구원은 다르다.
좋은 배양연구원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손기술만이 아닐 수 있다.
좋은 배양실은 결국 ‘시설+사람+시스템’
물론 배아 발달을 배양연구원 한 사람의 능력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난자의 질과 여성의 나이, 정자의 상태처럼 환자에게서 출발하는 요인이 있고 배양액과 배양기, 온도와 가스 농도, 공기질 등 수많은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또 하나가 더해진다. 바로 사람이다.
실제로 2026년 ESHRE 권고는 적정 인력 확보뿐 아니라 연구원의 교육과 숙련도 검증, 표준작업절차 준수, 지속적인 교육, 이상사건 보고와 조사, 연구원 간 의사소통까지 배양실 품질관리의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좋은 난임병원의 배양실을 단순히 ‘최신 배양기가 몇 대 있느냐’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좋은 장비와 배양환경이 ‘시설의 힘’이라면, 그것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숙련된 배양연구원은 ‘사람의 힘’이다. 그리고 사람의 힘에는 경력 몇 년이라는 숫자만으로 표시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작은 차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눈, 반복 작업에서도 순서를 지키는 꼼꼼함, 긴장되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 자신의 판단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 문제가 생겼을 때 숨기지 않고 말하는 태도다.
시험관아기시술(IVF)은 최첨단 생명과학 기술이다. 하지만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고 하나의 배아로 자라는 그 며칠 동안 최첨단 배양기 바로 옆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좋은 배아배양실을 만드는 것은 결국 ‘좋은 시설’과 ‘좋은 시스템’,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는 ‘좋은 배양연구원’이다.
※ 2026년 7월 국제학술지 ‘인간생식(Human Reproduction)’에 발표된 유럽생식의학회(ESHRE) IVF 배양실 실무그룹의 ‘IVF 배양실 우수실무 권고(ESHRE recommendations on Good Practice in the IVF laboratory)’와 2026년 ESHRE 연례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시험관아기 성공의 빠진 퍼즐: 배양연구원의 심리적 안전성과 리더십 역학이 팀 문화·배양실 성과·치료 결과에 미치는 영향(The missing puzzle of in vitro fertilization success: how embryologists’ psychological safety and leadership dynamics shape team culture, laboratory performance, and treatment outcomes)’, 배양연구원의 ICSI 경험과 수정·배반포 발달·착상 결과를 분석한 연구를 참고했습니다. ESHRE 권고는 ‘인간생식’ 2026년 8월호에 수록됐으며 DOI는 10.1093/humrep/deag096, PMID는 42405499입니다. 배양연구원 심리적 안전성 연구의 DOI는 10.1093/humrep/deag083.925다. 배양연구원의 특정 ‘성격’이 임신율이나 생아출산율을 직접 높인다는 의미는 아니며, 현재 근거는 숙련도와 표준절차 준수, 의사소통·안전문화 등 인적 요인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수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