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난임은 유전자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같은 유전자에 문제가 있는 남성이라도 식습관에 따라 난임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을까.
고지방·고당분 중심의 서구식 식단이 유전적으로 생식능력이 떨어진 수컷 생쥐의 난임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유전적 요인과 식습관이 각각 생식능력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두 요인이 겹치면 정자의 질과 번식 능력이 한층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 멜버른대학교 연구진이 수행한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휴먼 리프로덕션(Human Reproduction)’ 2026년 10월호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남성 난임과 관련된 M1AP 유전자의 기능을 제거한 생쥐를 이용해 식단이 생식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유전자에 문제가 있어도 난임 정도는 다르다
M1AP는 정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다. 특히 정자가 형성될 때 염색체가 정상적으로 나뉘도록 돕는 기능과 관련이 있다.
이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정자 생성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정자 수가 크게 줄거나 정자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 무정자증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유전자에 이상이 있다고 해서 모든 남성이 동일한 정도의 난임을 겪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정자가 극히 적게 만들어지는 반면 다른 일부에서는 정자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가 유전자 자체의 문제뿐 아니라 식습관과 같은 생활환경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정상 생쥐와 M1ap 유전자 기능을 제거한 생쥐를 각각 일반 식단과 지방·당분이 많은 서구식 식단으로 나눠 사육했다. 이후 정자 수와 운동성, 형태, 암컷의 임신 여부와 태어난 새끼 수 등을 비교했다.
생쥐 평균 8.25마리 출산…유전자 결손에 서구식 식단까지 겹치자 0.37마리로 줄어
연구 결과는 뚜렷했다.
정상 유전자를 가진 수컷 생쥐에게 일반 식단을 제공했을 때 한 번의 출산에서 태어난 새끼는 평균 8.25마리였다.
반면 M1ap 유전자 기능이 없는 생쥐에게 일반 식단을 제공하자 평균 새끼 수는 2.5마리로 줄었다. 정상 생쥐보다 약 70% 감소한 것이다.
유전자에 문제가 없는 정상 생쥐라도 서구식 식단을 먹으면 새끼 수가 평균 5.2마리로 감소했다.
가장 큰 차이는 유전자 결손과 서구식 식단이 동시에 나타난 집단에서 확인됐다.
M1ap 유전자 기능이 없는 생쥐에게 서구식 식단을 제공하자 평균 새끼 수는 0.37마리에 그쳤다. 정상 유전자에 일반 식단을 먹인 집단과 비교하면 약 98% 감소한 수치다.
이는 식습관과 유전적 취약성이 함께 작용할 때 생식능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 수치는 생쥐의 번식 결과이며 사람의 임신 확률이나 출산율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정자 운동성 떨어지고 비정상적인 정자도 증가
연구진은 출산 결과뿐 아니라 정자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살펴봤다.
유전자 결손과 서구식 식단이 겹친 생쥐에서는 고환 내부의 생식세포에 이상이 더 많이 관찰됐다.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거나 죽어가는 생식세포가 증가했고, 정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나타났다.
정자의 움직임과 형태에서도 변화가 확인됐다.
특히 난자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정자의 운동성이 더 나빠졌으며, 정자 머리의 형태가 비정상적인 경우도 증가했다.
정자는 단순히 살아 있는 것만으로 수정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난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움직여야 하고 정상적인 구조와 기능도 갖춰야 한다.
이번 실험에서는 유전적 결함이 있는 상태에서 서구식 식단까지 더해지자 이러한 정자의 기능이 더욱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정상 유전자를 가진 생쥐에서는 서구식 식단이 새끼 수를 줄였지만 정자 수와 운동성, 형태에 뚜렷한 악영향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반면 유전자 결손 생쥐에서는 식단의 영향이 정자 기능 저하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유전적 요인과 식습관 사이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결과로 해석했다.
같은 유전자 이상인데 누구는 무정자증, 누구는 정자 수 감소…이유는?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부분은 남성 난임의 원인을 하나의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남성 난임 검사를 통해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면 그 자체가 난임의 원인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러나 실제 생식능력은 유전자 이상뿐 아니라 여러 생활환경의 영향을 함께 받을 가능성이 있다.
연구진은 유전적으로 정자 생성 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좋지 않은 식습관이 추가되면 생식능력이 자연임신에 필요한 수준보다 더욱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같은 유전자 이상을 가진 남성에게서도 난임의 정도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M1AP 유전자 이상이 있는 모든 남성이 식습관에 따라 난임 정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사람을 대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이번 연구는 그러한 가능성을 실험동물에서 확인한 초기 연구라는 의미가 있다.
식단 바꾸면 유전성 남성 난임도 개선될까
이번 연구는 식습관 개선이 유전적 원인이 있는 남성 난임의 관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한계가 있다.
연구는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이 아니라 생쥐를 이용한 동물실험이다. 또한 이미 나빠진 생식능력이 식단을 바꾸면 얼마나 회복되는지 확인한 연구도 아니다.
따라서 서구식 식단을 피하면 유전성 남성 난임이 치료된다거나 정자 수가 회복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특히 M1AP 유전자 기능이 심하게 손상돼 정자 생성 자체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식습관 개선만으로 이를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남성 난임을 진단할 때 유전자 검사 결과뿐 아니라 식습관과 생활환경을 함께 살펴봐야 할 과학적 근거를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향후 사람을 대상으로 유전적 취약성과 식습관의 상호작용을 확인하고, 식단 개선이 실제 정자 질이나 임신 결과에 도움이 되는지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성 난임은 유전자 하나만으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유전적으로 생식능력이 취약한 경우 생활환경이 그 취약성을 더욱 크게 드러낼 가능성을 보여줬다.
※ 브렌던 J. 휴스턴(Brendan J. Houston), 조지프 응우옌(Joseph Nguyen), 모이라 K. 오브라이언(Moira K. O'Bryan), 제시카 E. M. 던리비(Jessica E. M. Dunleavy) 등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휴먼 리프로덕션(Human Reproduction)’에 발표한 논문 ‘A Western-style diet exacerbates male infertility in M1ap knockout mice(서구식 식단이 M1ap 유전자 결손 생쥐의 남성 난임을 악화시킨다)’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논문은 2026년 8월 31일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됐으며, 2026년 10월호 제41권 10호 1633~1642쪽에 게재됐습니다. 논문 DOI는 10.1093/humrep/deag130입니다. (원문: Human Reproduc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