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수가 충분하고 운동성도 정상이다. 정상 형태의 정자 비율에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면 정자의 무엇을 더 살펴봐야 할까.

남성난임 검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정액검사다. 정자의 농도와 총정자수, 운동성, 정상형태율 등을 확인해 남성의 생식능력을 평가한다. 하지만 이 수치들이 정상이라고 해서 정자 하나하나의 기능과 유전물질의 상태까지 모두 정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최근에는 기존 정액검사의 한계를 보완할 새로운 지표로 ‘정자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sperm mitochondrial DNA copy number·mtDNAcn)’가 주목받고 있다.

정자에도 머리 바로 아래 중편에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정자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는 이 미토콘드리아에 DNA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로, 쉽게 말해 ‘정자 한 개에 미토콘드리아 DNA가 몇 벌 존재하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2026년 9~10월 국제학술지 ‘인간생식 업데이트(Human Reproduction Update)’에 실린 종설에서 미국 웨인주립대학교 연구진은 정자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와 남성의 생식능력을 다룬 기존 연구들을 종합 분석했다. 모두 21개의 역학·임상·실험 연구를 검토한 결과, 정자의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가 많을수록 정자의 질이 좋지 않은 경향이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났다.

 

정자를 움직이는 ‘발전소’ 미토콘드리아

 

미토콘드리아는 세포가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기관이다. 정자에서는 머리 바로 아래 중편에 집중돼 있으며 정자가 난자를 향해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 공급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성숙한 정상 정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정자가 성숙하면서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는 크게 줄어드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정자 형성 과정에서 미토콘드리아의 수와 함께 미토콘드리아 DNA도 감소한다.

따라서 성숙한 정자에 미토콘드리아 DNA가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반드시 ‘에너지가 많고 건강한 정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정자가 만들어지고 성숙하는 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거나 미토콘드리아 기능에 문제가 있음을 반영하는 신호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토콘드리아 DNA 많을수록 정자 질은 오히려 낮았다

 

이번 종설에서 가장 일관되게 확인된 것은 정자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와 기존 정액검사 지표 사이의 관계였다.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가 높은 남성일수록 정자 농도와 총정자수가 적고 운동성이 낮았으며, 정상적인 형태의 정자 비율도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정자의 DNA 분절과 염색질 이상은 반대로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대규모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확인됐다. 중국 정자은행의 1164명에게서 얻은 5739개 정액 검체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가 가장 높은 집단이 가장 낮은 집단보다 정자 농도는 42.8%, 총정자수는 44.3% 낮았다. 전진운동성은 8.9%, 전체 운동성은 8.0% 낮았다.

일반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가 증가할수록 정자 농도와 총정자수, 전진운동성이 낮아지는 연관성이 나타났다.

 

정액검사가 정상이어도 ‘정자의 속’은 다를 수 있다

 

이 연구가 특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기존 정액검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남성난임을 들여다볼 가능성 때문이다.

현재 정액검사는 정자의 수와 움직임, 모양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정자의 DNA 손상이나 산화스트레스, 미토콘드리아 기능 이상과 같은 분자 수준의 문제까지 직접 보여주지는 못한다. 실제로 정액검사 결과가 정상 범위인데도 자연임신이나 보조생식술에서 반복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남성이 존재한다.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가 이런 ‘숨은 정자 문제’를 찾아내는 보조 지표가 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일부 연구에서는 정자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가 높을수록 자연임신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수정 가능성이 낮아지는 연관성도 관찰됐다. 기존 정액검사 지표에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를 추가했을 때 임신 가능성 예측력이 향상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배아·임신·출산까지 예측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가 곧바로 새로운 남성난임 진단검사가 된 것은 아니다.

정자의 수와 운동성, 형태 등 정액의 질과의 연관성은 여러 연구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났지만 실제 임신과 보조생식술 결과에서는 연구마다 차이가 있었다. 수정과 초기 배아의 질에서는 연관성이 관찰됐지만 임상적 임신이나 출산까지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측정 방법의 표준화도 필요하다. 현재 정량 중합효소연쇄반응(qPCR), 디지털 중합효소연쇄반응(dPCR) 등 여러 방법이 사용되고 있으며 검사실마다 분석법과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임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정상·비정상 기준치도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또 대부분의 연구는 정액 속 수많은 정자를 한꺼번에 분석해 평균적인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를 측정한다. 특히 난자세포질내 정자주입술(ICSI)에서는 실제로 단 하나의 정자가 선택되기 때문에 정액 전체의 평균값이 선택된 정자 한 마리의 상태를 얼마나 정확히 보여주는지도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그럼에도 이번 종설은 남성난임 평가가 ‘정자가 몇 마리인가, 얼마나 잘 움직이는가, 모양이 정상인가’를 넘어 정자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세포 안에서 어떤 분자적 이상이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액검사가 정상이라는 결과가 곧 ‘정자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정자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가 실제 진료에 사용되려면 대규모 전향적 연구와 검사 표준화, 임상 기준치 설정이 더 필요하지만 기존 정액검사가 놓치는 남성난임의 원인을 설명할 새로운 단서로서 연구 가치는 충분하다.

 

※ 2026년 9~10월 국제학술지 ‘인간생식 업데이트(Human Reproduction Update)’ 제32권 5호에 게재된 미국 웨인주립대학교 의과대학(Wayne State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및 C.S. 모트 인간성장발달센터(C.S. Mott Center for Human Growth and Development) 사브니 사완트(Savni Sawant)·제프리 M. 만(Jeffrey M. Mann)·J. 리처드 필스너(J. Richard Pilsner) 연구진의 종설 ‘정자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 남성 생식능력과 생식 성공의 지표(Sperm mitochondrial DNA copy number: a marker of male fertility and reproductive success)’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논문은 Human Reproduction Update 32권 5호 540~555쪽에 실렸으며, PMID는 42172631, DOI는 10.1093/humupd/dmag013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