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난임의 원인이 정자의 수나 운동성뿐 아니라 정자 내부에 존재하는 특정 단백질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자 수가 적거나 정계정맥류가 있는 남성에게서 정자의 성숙과 수정 과정에 관여하는 단백질이 감소하고, 단백질의 위치가 변화하는 과정도 지연되는 현상이 확인됐다.

일본 나고야시립대학교 연구진은 남성 85명의 정액을 분석해 정자 속 열충격단백질 A2(HSPA2)의 양과 분포 변화를 비교했다.

그 결과 남성난임과 관련된 이상이 있는 남성에게서 해당 단백질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으며, 정자 머리 부분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차이가 관찰됐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생식과 발달 저널(Journal of Reproduction and Development)' 2026년 10월 1일자에 게재됐다.

 

정자 수와 운동성만으로 수정 능력 판단하기 어려워

 

남성난임을 진단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시행하는 검사는 정액검사다. 정자의 수가 충분한지,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는지, 정상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검사 결과가 정자의 실제 수정 능력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정자의 수와 운동성이 정상 범위에 있더라도 수정 과정에 필요한 내부 기능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정액검사에서 일부 수치가 낮게 나타났다고 해서 모든 정자의 수정 능력이 상실됐다고 판단할 수도 없다.

연구진이 주목한 HSPA2는 정자가 만들어지고 성숙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열충격단백질'이라는 이름과 달리 단순히 열에 반응하는 물질이 아니라 세포 내부의 다른 단백질이 정상적인 구조와 기능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특히 HSPA2는 정자가 성숙하면서 수정에 필요한 기능을 갖추는 과정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이 단백질의 양뿐 아니라 정자 내부에서 위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남성난임과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남성 85명 비교…정자 수 적은 남성에서 단백질 감소

 

연구진은 세계보건기구(WHO)의 2021년 정액검사 기준에 따라 정상 소견을 보인 남성 28명과 정자 수가 적거나 정계정맥류가 있는 남성 57명의 정액을 비교했다.

정계정맥류는 고환 주변 정맥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되는 질환이다. 고환의 온도 상승이나 혈액순환 변화 등을 통해 정자 생성과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남성난임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연구진은 정액에서 정자를 분리한 뒤 HSPA2 단백질의 양을 측정하고, 정자를 일정 시간 배양하면서 단백질의 분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정자 수가 적은 남성의 HSPA2 단백질 양은 정상 소견 남성보다 유의하게 낮았다. 정계정맥류가 있는 남성에서도 단백질 감소가 확인됐다.

또한 HSPA2 단백질의 양은 정자의 운동성과 전체 운동성 정자 수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자의 운동성이 떨어지는 현상이 단순히 정자 꼬리의 움직임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정자 내부에서 작동하는 단백질의 변화와도 연결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자 머리 부분으로 이동하는 단백질 변화도 지연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결과는 HSPA2 단백질의 위치 변화다.

정자의 머리 앞부분에는 '첨체(acrosome)'라는 구조가 있다. 첨체는 정자가 난자를 둘러싼 구조와 상호작용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정자를 분리한 직후부터 24시간 동안 관찰하면서 HSPA2가 첨체 부위에 분포하는 양상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정자 수가 적거나 정계정맥류가 있는 남성은 정상 소견 남성보다 정자 처리 직후 첨체 부위에서 HSPA2가 관찰되는 비율이 낮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단백질의 위치가 변화했지만, 첨체 부위에서 가장 많이 관찰되는 시점도 상대적으로 늦었다.

정상적인 정자와 비교해 단백질이 필요한 위치에 분포하는 과정에 시간적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특히 정자 수 감소와 정계정맥류라는 서로 다른 상태에서 비슷한 변화가 확인됐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이 특정 질환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남성난임에서 나타나는 정자 기능 이상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다만 단백질의 위치 변화가 지연됐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수정 능력이 저하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남성난임 검사, 정자 내부의 분자적 기능까지 확대될까

 

이번 연구는 기존 정액검사로 확인하기 어려운 남성난임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단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임상에서 시행하는 정액검사는 정자의 수와 운동성, 형태 등 외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특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정자가 난자와 만나 수정에 이르기 위해서는 내부 단백질과 여러 생물학적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HSPA2처럼 정자의 성숙과 수정 과정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분석하면 기존 검사에서 원인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남성난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시험관아기시술(IVF)이나 미세수정(ICSI)을 준비하는 부부에게도 관심을 끌 만한 연구다. 미세수정은 정자 한 개를 난자 안에 직접 주입하는 방법이지만, 정자 내부의 모든 기능적 이상까지 해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연구는 HSPA2 단백질과 정자 기능의 연관성을 분석한 것으로, 실제 수정률이나 배아 발달률, 임신율, 생아출산율을 직접 비교한 연구는 아니다.

따라서 HSPA2 단백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수정 실패를 예측하거나, 해당 단백질 검사를 남성난임 진단에 곧바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정자 기능 이상 밝힐 새로운 단서…추가 임상연구 필요

 

남성난임은 정자 수 감소, 운동성 저하, 형태 이상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기존 검사만으로 명확한 원인을 찾기 어렵다.

최근 생식의학에서는 정자 DNA 손상과 산화스트레스, 단백질 발현 변화 등 정자의 내부 상태를 분석해 남성난임의 원인을 보다 정밀하게 규명하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연구 역시 정자의 양적인 특성뿐 아니라 수정 과정에 필요한 분자적 기능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연구 대상이 85명으로 비교적 적고, 실험실에서 정자를 분리해 관찰한 결과라는 한계가 있다. HSPA2 단백질 감소가 정자 기능 저하의 직접적인 원인인지, 이미 발생한 정자 손상을 반영하는 결과인지도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향후 더 많은 남성을 대상으로 HSPA2 단백질의 변화와 실제 수정 및 출산 결과를 비교한다면 남성난임 진단과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데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는 남성난임을 이해하기 위해 정자가 얼마나 많이 존재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지를 확인하는 것에서 나아가, 정자 내부에서 수정에 필요한 단백질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 일본 나고야시립대학교(Nagoya City University) 나츠메 아키코(Akiko Natsume), 오자키 야스히코(Yasuhiko Ozaki) 연구진 등이 국제학술지 ‘생식과 발달 저널(Journal of Reproduction and Development)’ 2026년 제72권 제5호에 발표한 논문 '남성난임에서 인간 정자 열충격단백질 A2의 동적 변화가 갖는 역할(Role of dynamic changes in human sperm heat shock protein A2 in male infertility)'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논문 DOI는 10.1262/jrd.2026-023이며, 원문은 학술지 공식 논문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