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ChatGPT, OpenAI)을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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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막은 10mm로 충분히 잘 자랐습니다.”

배아이식을 앞두고 듣고 싶은 말이다. 그런데 충분한 두께의 자궁내막에 좋은 배아를 이식했는데도 착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연구는 자궁내막을 ‘몇 mm인가’만으로 평가해서는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영역을 보여준다. 내막은 두꺼워지는 것만으로 준비가 끝나는 조직이 아니라, 배아를 받아들이기 위해 세포 자체가 ‘임신 모드’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배아이식을 앞두고 초음파를 볼 때마다 내막 두께에 신경이 곤두선다. 6mm라면 걱정하고, 8mm를 넘으면 안도하고, 10mm쯤 자랐다는 말을 들으면 이번에는 잘될 것 같은 기대도 생긴다. 현실에서는 내막이 충분히 두꺼워도 착상에 실패한다.

왜 그럴까.

최근 국제학술지 ‘인간생식(Human Reproduction)’에 발표된 연구가 흥미로운 단서를 내놨다. 연구진이 들여다본 것은 내막의 ‘두께’가 아니라 배아를 맞이하기 위해 내막 세포가 제대로 변신했느냐였다.

 

내막은 두꺼운 ‘이불’이 아니다

 

자궁내막을 흔히 배아가 내려앉는 푹신한 침대에 비유한다. 하지만 실제 자궁내막은 가만히 배아를 기다리는 침대와는 거리가 멀다.

배란이 끝나고 프로게스테론이 증가하면 자궁내막 안의 ‘기질세포’들이 대대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기질세포란 쉽게 말해 자궁내막의 바탕을 이루는 세포다.

이 세포들이 배아가 들어왔을 때 착상과 임신을 돕는 특별한 세포로 바뀌는 과정을 의학적으로 ‘탈락막화(decidualization)’라고 부른다.

이름은 어렵지만 뜻은 간단하다. ‘내막이 임신을 받을 수 있는 상태로 변신하는 과정’​이다.

배아가 잘 파고들도록 주변 환경을 만들고, 영양 공급을 준비하고, 배아에서 만들어지는 태반 쪽 세포가 너무 많이 또는 너무 적게 침투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일까지 관여한다. 임신 초기에는 면역환경을 조절하고 임신을 유지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니 초음파에서 내막이 10mm로 보인다는 것과 그 안의 세포들이 이러한 ‘임신 준비’를 제대로 끝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두께는 자로 잴 수 있지만 내막의 기능까지 자로 잴 수는 없는 것이다.

 

반복착상실패 여성의 내막에서 발견된 차이

 

연구진은 반복착상실패 여성과 임신 능력이 확인된 여성의 자궁내막을 비교했다. 여기에서 눈에 띈 것이 ‘황산화(sulfation)’라는 현상이었다.

황산화 역시 이름부터 어렵다. 우리 몸에서는 만들어진 단백질에 여러 가지 작은 화학적 표시를 붙여 단백질의 작동 방식을 바꾼다. 황산화는 그 가운데 하나로, 단백질에 ‘황산기’라는 작은 꼬리표를 붙이는 작업 정도로 생각하면 쉽다.

반복착상실패 여성의 자궁내막 기질세포에서는 이 황산화 수준이 높아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 작업을 누가 조절하고 있을까. 여기서 연구진이 찾아낸 주인공이 ‘PAPSS2’다.

PAPSS2의 정식 영어 이름을 외울 필요는 없다. 쉽게 말하면 세포가 단백질에 황산 꼬리표를 붙일 때 필요한 재료를 만들어주는 효소다.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자궁내막 세포가 임신을 준비하는 ‘탈락막화’를 시작하자 PAPSS2는 오히려 줄어드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연구진이 실험적으로 PAPSS2를 줄여봤더니 탈락막화는 더 잘 진행됐다. 반대로 PAPSS2를 많이 만들도록 했더니 탈락막화에 방해가 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세포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여기부터가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자궁내막 세포에는 ‘BMPR1A’라는 단백질이 있다. 이것도 이름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세포 바깥에서 오는 ‘임신 준비 신호’를 받아 세포 안으로 전달하는 안테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안테나를 찾아오는 신호 가운데 하나가 ‘BMP2’. BMP2는 자궁내막의 탈락막화에 관여하는 중요한 신호물질이다.

문제는 안테나와 신호가 얼마나 잘 만날 수 있느냐다. 연구진이 PAPSS2를 줄이자 BMPR1A에 붙어 있던 황산화가 감소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BMPR1A가 BMP2 신호를 더 잘 받아들이게 됐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PAPSS2가 줄어든다 → 안테나를 방해하던 황산 꼬리표가 줄어든다 → 임신 준비 신호가 더 잘 전달된다.

신호를 받은 세포 내부에서는 다시 ‘SMAD1/5/9’이라는 전달체가 움직였다. 이것 역시 이름보다는 역할이 중요하다. 밖에서 받은 메시지를 세포 안쪽까지 전달하는 ‘신호 전달 메신저’​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자가포식(autophagy)’이다.

자가포식이라고 하면 세포가 스스로를 잡아먹는 무서운 현상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세포 안의 낡고 불필요한 물질을 청소하고 재활용하는 시스템이다. 집에 손님이 오기 전에 대청소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 세포 내부의 ‘대청소 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 자궁내막 기질세포의 탈락막화도 촉진됐다. 연구진의 세포 실험에서는 배아가 나중에 태반을 만드는 영양막세포가 내막 쪽으로 침투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도 높아졌다.

 

결국 ‘10mm’만 보고서 알 수 없는 것

 

“내막이 10mm인데 왜 착상이 안 됐을까?”

이번 연구가 그 환자의 착상 실패 원인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두꺼운 내막=착상 준비가 완벽한 내막’이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를 분자 수준에서 보여준다.

초음파는 내막의 두께와 모양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의 세포들이 프로게스테론에 제대로 반응하고 있는지, 임신을 위한 세포로 충분히 변신했는지, 배아와 신호를 주고받을 준비가 됐는지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쉽게 말하면 내막 두께가 ‘외형’이라면 탈락막화는 ‘실력’에 가깝다.

그렇다고 내막 두께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얇은 자궁내막과 IVF 결과의 관계는 별개의 중요한 임상 문제다. 이번 연구가 말하는 것은 내막을 평가할 때 ‘몇 mm인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물학적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PAPSS2 검사를 하면 될까.결론은 아직 아니다.

이번 연구는 ‘착상이 안 되는 여성은 PAPSS2 검사를 받으라’는 연구가 아니다. PAPSS2를 낮추는 치료를 하면 임신율이나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입증한 임상시험도 아니다.

연구진은 사람의 자궁내막 조직과 배양한 자궁내막 기질세포, 유전자 데이터, 생쥐의 인공 탈락막화 모델 등을 이용해 이 경로를 추적했다. 연구진 역시 더 큰 규모의 연구를 통해 실제 사람의 생식 과정에서 이 기전의 중요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반복착상실패의 원인을 PAPSS2 하나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이를 새로운 착상검사나 치료법으로 사용할 단계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가 재미있는 이유가 있다. IVF에서는 그동안 배아를 많이 들여다봤다. 몇 세포인지, 등급은 어떤지, 배반포까지 갔는지, 염색체는 정상인지 끊임없이 확인했다.

하지만 착상은 배아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배아가 도착해도 자궁내막이 ‘임신 모드’로 전환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자궁내막 연구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몇 mm까지 자랐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이 내막은 정말 배아를 맞을 준비가 됐는가.’

이번 연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내막의 실력’을 설명하는 새로운 퍼즐 하나를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