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앞치마 두른 남성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1970~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남성들에게는 뒤통수만 긁적이는 어색한 일이었다면 요즘은 요리하는 남성을 ‘요섹남(요리를 잘하는 섹시한 남자)’이라고 칭송할 정도다. 수십만 명 이상 회원을 자랑하는 요리 유튜버 중에는 남성들이 넘쳐난다.

현 대통령도 예전에 김건희 여사에게 청혼하면서 “평생 집밥 해 주겠다”고 했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다자녀 공무원과의 오찬에선 남성용 앞치마를 선물하며 “남자도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벌 2~3세 남성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요리 사진을 올리며 음식솜씨를 자랑할 정도니까 황혼기에 접어드는 남성들로서는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이다. 과연 필자의 세대 남성 중에 부엌이 익숙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다.

남자를 주방에 세운 1등 공신은 방송이다. 8~9년 전부터 서로 경쟁하듯 ‘쿡방(요리를 주제로 한 방송)’을 내보냈다. 백종원, 이연복 같은 남성 요리연구가들이 나와 쉽게 만들 수 있는 집밥 요리를 선보였고, 요리 강습까지 열어 유명 배우와 가수를 수제자로 배출했다. 공중파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 덕분에 결혼을 앞둔 남성이 요리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실제로 요리학원 수강생의 30~40%가 남자라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어머니들조차 요리하는 아들을 예사롭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성리학(性理學)의 영향으로 수백년 동안 이 땅에 자리잡았던 남녀유별(男女有別)의 법칙을 공중파가 철폐해 버린 거나 다름없다. 한국 사회에서는 시대가 바뀌어도 의식주는 물론이고 인간사의 모든 분야에서 남녀의 사사로운 접촉을 규제하는 내외법(內外法)과 성리학 기본 예법서인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나오는 주부(主婦)의 역할이라는 가치가 지배적이었다. 남성은 부엌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고 했던 그 구시대 유물 같은 사고가 봄날에 눈 녹듯이 녹아서 이 땅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이참에 제발 부탁한다. 방송이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등을 통해 이 땅에 사는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만들고, 아기 낳을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를.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가가호호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게 할지 방송도 고민해야 한다.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먹방 아니면 쿡방이고, 건강과 여행 관련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어쩌다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주로 아이를 키우느라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힘든 육아기를 다루기 일쑤다. 멋지고 화려한 삶을 사는 드라마 주인공은 대부분 혼자 사는 싱글이다. 이래서야 이 땅의 젊은이들이 결혼을 꿈꾸겠는가.

 

이스라엘·프랑스가 해낸 그것

 

최근 방송에서 요리 예능 프로그램만큼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분야가 의료다. 건강 관련 프로그램이 급증했다. 아쉬운 점은 성인병, 면역, 정형외과 등 중장년층과 황혼층을 위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는 의료 예능 프로그램만 많을 뿐, 그 어디에도 난임 문제를 해결하거나 임신을 돕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방송에서 산부인과나 비뇨기과처럼 다분히 민망한 분야의 지식을 리얼한 대화로 전달하려면 ‘19금’ 멘트가 불가피해 제약이 따를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더 흥미진진한 의학 정보라는 평을 얻으며 젊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호기심을 유발하지 않을까.

출산을 장려하겠다며 역대 정부가 수년간 온갖 정책을 내놓고 예산을 투여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이스라엘은 여성 1명당 평균 출산율이 3명이다. 이스라엘 내 초정통 유대인 종파인 하레디 정파의 출산율은 6.6명에 달한다. 아무리 유대인이라는 가치와 자부심이 강하다고 해도 급변하는 21세기에 어떻게 그토록 한결같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성경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수십 년간 출산율 1위 국가의 명성을 지킨 데는 방송이 큰 역할을 했다. 방송을 활용해 끊임없이 자국민을 설득한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유대교 율법과 유대인만의 가치가 더 빠르게, 더 널리 전파되고 있다. 실제로 하레디 정파의 인구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2배씩 늘고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 부부가 난임·불임인 경우 대리출산까지 허하고, 남성이 불임이면 유대인 정자은행을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치료비도 전액 국가가 부담하는 등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저출산 문제를 모범적으로 해결한 대표 국가로 프랑스를 빼놓을 수 없다. 한때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로 손꼽히던 프랑스도 이스라엘처럼 정부 주도의 다양한 정책에 힘입어 유럽연합(EU)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1.83(2021)명의 출산율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더구나 이 수치가 이민자가 아닌 자국 여성의 출산율이라는 게 놀랍다.

현재 영국, 일본, 스페인, 이스라엘에서는 비혼 출산 즉 동성애 부부와 비혼 여성의 정자은행 이용을 통한 체외수정(IVF) 시술이 가능하다. 난임 부부에게 10회까지 시술비 전액을 지원하고 결혼이나 출산을 한 사람에게는 감세 혜택을 주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프랑스도 혼외 출산을 인정하는 개방적 정책이 전체 출산율을 올렸다. 국내총생산(GDP)의 약 4%에 이르는 예산을 자녀를 둔 가족 정책에 할애하는 프랑스는 자국민이 출산하면 출생 수당, 입양 수당, 부모 수당에 보육원 보조금까지 지급하는 등 보육과 육아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방송사에서는 다산(多産)한 커리어우먼의 행복한 일상을 그리는 드라마를 통해 아기를 낳으면 정부가 책임지고 키우고 가르친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최근 중국은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미혼 남녀에게 ‘데이트 휴가’를 준다. 재미있는 건 데이트 휴가가 1일이 아니라 1박 2일이라는 것이다. 하룻밤을 같이 보내라고 등 떠미는 셈이다. 북한도 출산율을 높이려고 다자녀 가구에 주택을 1순위로 배정하는 등 주택법을 개정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군인, 교원, 공로자가 1순위였다면 지금은 ‘세쌍둥이나 다자녀를 둔 가구’가 1순위다. 북한 방송에서는 자식을 많이 낳아 훌륭히 키우는 세대가 최고의 영웅이라고 부추긴다.

저출생은 단순히 인구 감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20년간 초저출산 현상이 지속되면서 신입생은 물론이고 재학생이 없어 앞으로 10년 안에 4년제 대학교 40곳이 폐교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5년간(2018~2022) 전국 초·중·고등학교 193개교가 이미 문을 닫았다. 서울에서도 폐교되는 일반계 고등학교가 생겼다.

이뿐만 아니다. 대학에는 힘든 전공을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실례로 2050년이면 이공계 대학원생이 현재 절반 이하로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의 산업과 IT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 1970~80년대 공과대 열풍의 공이 컸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래가 걱정이 된다.

 

당장 효과 미미해도 멈추지 말아야

 

저출생의 현실은 가히 재앙이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이제 그 숙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왔다. 시대 탓, 세태 탓, 세대 탓은 그만하고 정부는 물론이고 언론과 방송이 적극 선봉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출산 장려 정책과 경제적 지원에 힘써야 할 뿐만 아니라 출산 문화를 확산하는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한다. 이른바 ‘응애’ 캠페인(필자가 만들어보았다)이 그것이다. 스피노자의 명언처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마음으로 응애 캠페인을 펼치고 이에 동참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20년 전 유한킴벌리가 몽골 토진나르스 사막 지역에 소나무를 심어 여의도 11배 넓이의 소나무 숲을 일궈낸 것처럼 지금은 출산 장려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우선 나부터 실천하겠다. 적극적으로 난자를 뽑고, 좋은 수정란을 만들어 자궁 내 좋은 위치에 이식해 착상률을 높이도록 난임 전문의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난자 은행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것이다.

‘응애 캠페인’은 언론이 나서서 시작해야 한다. 당장의 효과가 미미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멈추지 말아야 한다. 임신, 출산만 부추기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세상의 모든 예비 어머니(가임기 여성)가 생체리듬에 순응하며 생활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음주량 3분의 1로 줄이기, 담배 끊기, 하루 40분 걷기, 10분 햇볕 쬐기, 균형 있게 음식 먹기, 스마트폰 대신 가족들과 얼굴 맞대고 대화하기, 숙면 취하기 등을 독려하다 보면 이 땅에도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 출산을 선호하는 문화가 뿌리내리지 않을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