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주머니가 사색이 된 얼굴로 내게 달려왔다. 초등학교 3학년밖에 안 된 딸이 초경(첫월경)이 나왔다며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성조숙증은 아닌지’, ‘이렇게 빨리 초경을 하면 키가 안 자라는 것은 아닌지’ 그녀에게서 걱정스러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옆집 아이를 불러서 조심스레 ‘생리혈이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인지’, ‘가슴이 봉긋 솟아올랐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질강 쪽에서 출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요도 쪽에서 나오는 것 같아서 소변 검사부터 해보자고 했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여아에서 생리혈과 같은 질 출혈이 있는 경우 초경일 수도 있지만 일과성 출혈일 가능성도 있다. 젖 봉오리가 생겼거나 유두가 커졌는지, 치모(恥毛)가 생겼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 다시 말해서 성호르몬 분비가 활발해지면서 신체적으로 변화(치모, 가슴멍울 등)가 생기는 2차 성징 후에 초경을 해야 순서가 맞다.
어린아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경을 맞게 되면 혼란이 생길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불안해질 수 있다. 엄마 역시도 너무 빠른 발달(성조숙증)로 인해 조바심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탕후루의 비극
한국 여아의 초경 평균 연령은 12.8세이다. 1990년 말만 해도 13.12세였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영국은 13.6세로 50년간(1940년~1994년) 4개월이 빨라졌다는 통계가 있다. 미국은 12.43세로, 백인 여아(12.6세)보다 흑인 여아(12.2세)가 좀 더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초경 연령이 100년 전에 비해 최대 4년 정도 빨라져서 11.9세라고 한다.
초경이 빨라지는 가장 큰 원인은 영양 과잉 및 불균형에 있다고 본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당과 지방의 섭취가 많아지면 체지방 비율이 높아져서 과체중이나 소아 비만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되면 지방층에서 여성호르몬이 생기면서 유방이 발달하고 성선자극호르몬(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이나 성선호르몬이 증가해 사춘기가 빨리 오게 된다. 그래서 유년기에서 급성장기 전의 여자아이는 탕후루나 초콜릿, 햄버거나 고칼로리 피자 등을 피하고 채소를 곁들인 음식이나 단백질이 풍부한 균형식을 섭취해야 한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성인 포르노물, 성인 오락물에 노출이 되었을 경우다. 이 정도는 아니어도 스마트폰이나 TV에서 쏟아지는 드라마, 노래, 춤, 여흥 프로 제작물들이 여아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K-POP을 예로 들어보자. 여성 아이돌이 세계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일본 도쿄돔에서의 공연한 아이돌 뉴진스가 40대 일본 남성들에게까지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아이돌이 보여주는 노래, 율동, 옷차림, 화장, 퍼포먼스가 전 세계적으로 이처럼 인기몰이를 하고 있으니 요즘 아이들이 어찌 열망하듯 따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문화가 자극이 되어 여아들의 신체적 발달을 점점 더 빨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미 애틀랜타 에모리대학교에서 발표한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태아기나 유년기에 초미세먼지(PM2.5)와 미세먼지(PM10)에 다량 노출된 경우 초경 연령이 빨라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유해한 환경 화학 물질이 신체에 침투하여 광범위한 호르몬 변화를 자극할 수 있고, 성조숙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경이 빨라지는 건 ‘성조숙증’이다. 성조숙증은 2차 성징이 8세 이전에 나타나는 질환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어른 젖가슴처럼 되어 있거나 어른처럼 치모가 수북하고 월경이 시작되어 버리는, 다시 말해서 난소에서 난포가 자라서 배란이 일어나서 생기는 월경을 보이는 아이들을 일컫는다.
급성장기를 빨리 맞이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성조숙증의 가장 큰 걱정은 성인 여성의 생리양에 육박할 정도의 월경을 규칙적으로(월 1회)하게 되면서 성장판이 닫혀서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급성장기(가슴멍울~초경시작까지 2년간)에 1년에 7~8cm, 2~3년간 20cm 내외로 자란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어린 나이에 급성장기가 와서 성장판을 일찍 닫히게 되는 것은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성조숙증일 때 어떠한 치료를 해야 할까. 성조숙증으로 진단된 여아에게 성선 자극분비 호르몬 유사체(GnRH 아날로그)라는 약제를 쓴다. 쉽게 말해서 ‘월경 일시 멈춤 치료’라고 보면 된다. 이를 통해 2차 상징의 발달을 다소 누그러뜨릴 수가 있다.
또한 성조숙증이면서 나이에 비해 성장곡선이 평균 이하를 보인다면 성장판이 닫히기 전에 성장호르몬을 같이 투여해서 좀 더 키가 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따라서 월경이 시작되었는데 키가 너무 작다면 소아청소년과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가 성조숙증 확진을 받게 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를 관찰하면서 치료를 받으면 된다. 무관심도 조바심도 아닌, 인내심으로 지혜롭게 대처하면 되는 것이다.
조바심 아닌 인내심이 필요
일본인으로 한국에 귀화한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 사람들이 키가 작은 이유를 “학동기(7~12세) 소식(小食)에 의한 영양소 부족”이라고 설명했다. 어린아이들은 보통 오후 3시경에 하교를 하게 되는데, 간식으로 카스테라나 달달한 쿠키, 만쥬, 슈크림을 간식으로 먹으면 이로 인해 식욕이 떨어져서 저녁을 먹지 않거나 소식(小食)을 하게 되고, 급성장기에 영양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키가 크지 못했던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재일교포 학생들의 신장이 일본 학생에 비해 큰 이유는 같은 시기에 달달한 음식이 아닌 옥수수, 고구마를 먹고, 음식량도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즉 학동기 아이들에게 균형 잡힌 식사, 즉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은 엄마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난임 전문의로서 항상 우려하는 것이 있다. 여성 몸의 생식 시스템은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자궁으로 연결된 무선통신 체제(HPO 생식축)다. 즉 호르몬이라는 전파가 뇌에서 난소, 자궁으로 연결이 된다. 따라서 항상 마음에 두고 있는 진료원칙이 있다면 여성의 생식 시스템의 원활, 즉 생식 가능을 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부모는 아이에서 소녀(소년)로, 여인(남성)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생활습관, 섭생, 체중관리 등에 신경을 써줘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