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아기시술(IVF)을 받다 보면 환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난자 질’이다. 같은 날 채취한 난자라도 어떤 난자는 수정되고 배반포까지 자라는 반면 어떤 난자는 수정되지 않거나 발달 도중 멈춘다.
그렇다면 ‘좋은 난자’는 도대체 무엇이 다를까.
지금까지 난자의 품질을 판단하는 데는 주로 현미경으로 보는 형태학적 평가가 이용돼 왔다. 난자의 모양과 성숙 상태 등을 관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겉모습이 비슷한 성숙 난자라고 해서 수정 이후의 발달능력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이 차이를 난자 내부의 ‘단백질 지문’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난자가 수정되고 배아로 성장하는 능력을 좌우하는 단백질 조합을 찾아낸다면 장기적으로는 난자 품질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UNSW Sydney)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인간생식(Human Reproduction)》 2026년 10월호에 발달능력이 서로 다른 난자의 단백질체를 비교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논문은 8월 20일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됐으며 10월호 1741~1761쪽에 정식 게재됐다.
좋은 난자와 그렇지 않은 난자, 단백질부터 달랐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난자 발달능력’이다. 이는 난자가 정상적으로 수정되고 이후 배아 발달을 뒷받침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연구진은 생쥐 난자를 이용해 세 가지 서로 다른 성숙 조건을 비교했다.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성숙한 난자와 일반적인 체외성숙(IVM) 난자, 그리고 난자의 성숙 과정을 단계적으로 조절하는 CAPA-IVM 방식으로 성숙시킨 난자다.
이렇게 발달능력이 서로 다른 난자와 난자를 둘러싼 난구세포(cumulus cell)를 질량분석법으로 분석해 어떤 단백질이 얼마나 존재하는지를 들여다봤다.
그 결과 난자에서는 총 1736개, 난구세포에서는 3212개의 단백질이 확인됐다. 분석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 연구 결과에서도 난자 약 1600개, 난구세포 약 3100개 수준의 단백질이 비교 대상에 포함됐다.
흥미로운 점은 난자가 어떤 방식으로 성숙했느냐에 따라 전체 단백질 구성이 뚜렷하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난자에서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번역(translation)’, 세포 내부의 불필요하거나 손상된 물질을 정리하는 ‘자가포식(autophagy)’, 세포가 외부 물질을 안으로 받아들이고 운반하는 ‘엔도사이토시스(endocytosis)’와 관련된 단백질 경로에서 차이가 나타났다. 난자를 둘러싼 난구세포에서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과정과 세린(serine) 생합성 등에 변화가 관찰됐다.
쉽게 말하면 좋은 난자는 단순히 ‘예쁘게 생긴 난자’가 아니라 수정 이후 초기 배아 발달을 준비하기 위해 내부의 단백질 생산·정리·운반 시스템이 다른 상태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클라트린·RPL24·EIF2A…‘난자 품질 후보 단백질’ 확인
연구진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갔다.
대규모 단백질 분석에서 발견된 차이가 실제로 확인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후보 단백질을 별도의 방법으로 검증했다. 그 결과 세포 내 물질운반에 관여하는 클라트린(clathrin), 리보솜 단백질 L24(RPL24), 단백질 합성 과정에 관여하는 진핵세포 개시인자 2A(EIF2A) 등의 변화가 단백질체 분석 결과와 일치했다.
이 단백질들은 난자 안에서 단순히 존재하는 물질이 아니다. 난자가 수정 후 초기 배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고 세포 안의 물질을 적절한 위치로 이동시키는 기본적인 생명활동과 연결돼 있다.
즉 ‘좋은 난자’를 결정하는 것은 현미경으로 보이는 외형 하나가 아니라 난자 내부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여러 분자 시스템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람 난자 49개도 확인했다
이번 연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생쥐 실험으로 끝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보조생식술(ART)을 받은 환자 36명에게서 연구용으로 기증받은 사람 난자 49개를 이용해 생쥐 난자에서 발견한 주요 단백질이 사람 난자에도 존재하는지를 확인했다. 일부 난자에는 구제 체외성숙(rescue-IVM)을 시행해 미성숙 난자와 성숙한 MII 난자에서 단백질 발현을 살펴봤다.
그 결과 생쥐에서 난자 발달능력과 관련해 주목한 클라트린과 RPL24, EIF2A 등의 단백질이 사람의 GV 단계 미성숙 난자와 MII 단계 성숙 난자에서도 확인됐다.
이는 생쥐에서 발견한 단백질 특징 가운데 일부가 사람 난자에서도 보존돼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앞으로 난자 검사로 ‘좋은 난자’를 골라낼 수 있을까
여기서는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이번 연구가 ‘단백질 검사만 하면 임신이 잘되는 난자를 골라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은 아니다. 핵심 단백질체 분석은 생쥐 난자를 대상으로 이뤄졌고, 사람 난자에서는 후보 단백질이 실제 존재하는지를 확인한 단계다.
연구진도 사람의 MII 성숙 난자는 같은 환자, 같은 난자채취 주기 안에서도 품질이 서로 다를 수 있어 인간 난자의 발달능력을 결정하는 기전을 밝히는 데 아직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단백질체 검사를 위해 난자를 직접 분석한다면 해당 난자를 그대로 수정과 이식에 사용하는 데 현실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실제 임상에서 활용하려면 난자를 손상시키지 않고 품질을 간접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난구세포의 변화도 중요하다. 이번 연구에서는 난구세포에서도 활성산소 해독, 세린 합성뿐 아니라 스테로이드·콜레스테롤 생합성과 관련된 단백질 변화가 관찰됐다.
난자를 직접 건드리지 않고 주변 세포에서 난자의 상태를 읽어낼 수 있다면 향후 비침습적인 난자 평가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역시 추가적인 인간 대상 연구와 임상 검증이 필요한 단계다.
‘몇 개 채취했나’ 넘어 ‘어떤 난자인가’ 연구로
시험관아기 시술에서 난자 수는 중요한 지표지만 숫자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같은 수의 난자를 채취해도 수정률과 배반포 형성률, 임신 결과가 사람마다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난자의 발달능력 차이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좋은 난자’를 당장 골라내는 검사를 개발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동안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형태학적 특징에 크게 의존했던 난자 평가를 분자 수준으로 확장해, 난자 내부에서 실제로 어떤 생물학적 과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높은 발달능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추적했다는 데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분자적 특징을 규명하는 작업이 앞으로 난자 발달능력을 정량화할 수 있는 진단법 개발과 보조생식술 개선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 2026년 8월 20일 온라인 공개되고 2026년 10월 국제학술지 《인간생식(Human Reproduction)》 제41권 10호에 게재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 시드니(University of New South Wales Sydney) 여성건강·임상대학원 난임·연구센터(Fertility & Research Centre) Emily R. Frost, Dulama Richani, Robert B. Gilchrist 등 연구진의 논문 ‘발달능력이 서로 다른 모델에서 확인한 난자 품질의 단백질체 특징(A proteomic signature of oocyte quality from models of varying oocyte developmental competence)’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논문은 Human Reproduction 41권 10호 1741~1761쪽에 게재됐으며, PMID는 42625370, DOI는 10.1093/humrep/deag134입니다. 단백질체 원자료는 ProteomeXchange 데이터셋 PXD073269에 공개돼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