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난임의 원인은 선천적인 질환이나 생식기관의 이상에만 있지 않다.
흡연과 음주, 비만, 수면 부족 등 현대인의 일상적인 생활습관도 정자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정자 수와 운동성뿐 아니라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의 손상과도 관련이 있어 임신을 준비하는 남성이라면 생활습관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 약 6명 중 1명이 일생 동안 난임을 경험한다. 난임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며 남성 요인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생식의학계에서는 정자의 수와 운동성뿐 아니라 산화스트레스와 DNA 손상 등 정자의 질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인에 주목하고 있다.
흡연과 과음, 정자 DNA 손상 위험 높여
흡연은 남성 생식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생활습관이다.
담배 속 니코틴과 여러 유해물질은 활성산소를 증가시켜 정자의 세포막과 DNA를 손상시킬 수 있다. 연구에서는 흡연 남성의 정자 수와 운동성이 낮아지고 DNA 분절화가 증가하는 경향이 보고됐다. DNA 분절화란 정자에 담긴 유전정보가 손상된 정도를 뜻한다.
전자담배 역시 안전한 대안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전자담배가 남성 생식기능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은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일부 연구에서는 정자 건강과의 부정적인 연관성이 관찰됐다.
과도한 음주도 문제다. 장기간의 과음은 남성호르몬 조절과 고환 기능에 영향을 주고 정자 생성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다만 소량의 음주가 정자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마다 결과가 달라 모든 음주가 동일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볼 수는 없다.
복부비만과 운동 부족, 정자 생성 환경 악화
복부비만은 남성호르몬의 균형을 변화시키고 만성 염증과 인슐린 저항성을 증가시켜 정자 생성에 불리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비만 남성에서 정자 농도와 총정자 수, 운동성이 낮아지는 경향이 여러 연구에서 보고됐다.
특히 장시간 앉아서 일하고 운동량이 부족한 생활은 체중 증가와 대사건강 악화로 이어지기 쉽다. 다만 오래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자가 손상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좌식생활과 정액검사 결과의 연관성은 연구마다 차이가 있다.
규칙적인 유산소운동과 적절한 체중 관리는 전반적인 건강뿐 아니라 생식건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무리한 운동이나 급격한 체중 감량보다는 지속 가능한 생활습관 개선이 중요하다.
사우나·뜨거운 목욕, 고환 온도 상승 주의
고환은 정상적인 정자 생성을 위해 체온보다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장시간 고온에 노출되는 환경은 정자 생성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잦은 사우나와 뜨거운 탕 목욕,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장시간 사용하는 습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반복적인 고온 노출은 정자 수와 운동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다만 가끔 하는 사우나나 일상적인 온수 샤워가 곧바로 남성난임을 유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열에 노출되는 온도와 시간, 반복 횟수에 따라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
수면 부족과 불규칙한 생활도 정자 건강에 영향
늦은 취침과 만성적인 수면 부족 역시 주의해야 한다. 수면은 남성호르몬 분비와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부 관찰연구에서는 수면시간이 지나치게 짧거나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은 남성에서 정자 수와 운동성, DNA 손상 지표가 불리하게 나타났다. 다만 수면 부족이 정자 질 저하를 직접 유발하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임신을 준비하는 남성은 일정한 취침·기상 시간을 유지하고 하루 7~9시간의 충분한 수면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근육 키우려 사용한 남성호르몬, 무정자증 유발할 수도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 사용하는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나 외부에서 투여하는 테스토스테론은 정자 생성을 심각하게 억제할 수 있다.
체외에서 남성호르몬이 공급되면 뇌에서 고환의 정자 생성을 자극하는 호르몬 분비가 감소한다. 그 결과 정자 수가 크게 줄거나 무정자증이 발생할 수 있다.
사용을 중단한 뒤 정자 생성 기능이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회복까지 수개월 이상 걸릴 수 있으며 개인차도 크다. 임신을 계획하는 남성이라면 테스토스테론 치료나 근육 증강 목적의 호르몬 사용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정자 건강 개선, 임신 준비 최소 3개월 전부터
정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환에서 정자가 생성되는 데 약 74일이 걸리며 이후 부고환에서 성숙하는 과정까지 고려하면 대략 3개월이 필요하다.
따라서 금연이나 체중 감량, 수면 개선 등 생활습관을 바꾸더라도 정액검사 결과가 즉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면 적어도 3개월 전부터 생활습관을 점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만 정자 건강이 나쁜 원인을 모두 생활습관에서 찾을 수는 없다. 정계정맥류와 호르몬 이상, 유전적 요인, 생식기관의 폐쇄 등 의학적 원인도 존재한다. 정액검사에서 이상이 확인됐다면 생활습관 개선과 함께 남성난임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세계보건기구도 2025년 난임 진료 지침에서 흡연과 음주, 신체활동, 체중 관리 등에 관한 생활습관 상담을 권고했다. 생활습관을 개선한다고 반드시 임신이나 출산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 스스로 생식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남성난임 예방과 치료는 정액검사 수치만 확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정자가 만들어지는 약 3개월 동안의 생활환경을 함께 점검하는 것이 건강한 임신을 준비하는 첫걸음이다.
※ 세계보건기구(WHO)가 2025년 발표한 난임 예방·진단·치료 지침과 남성 생식건강 관련 학술연구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주요 참고 연구는 국제학술지 Reproductive Biology and Endocrinology에 발표된 ‘생활습관·환경·건강요인과 정자 DNA 분절화의 연관성에 관한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Lifestyle-, environmental-, and additional health factors associated with an increased sperm DNA fragmentation: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DOI: 10.1186/s12958-023-01054-0)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