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의 DNA가 손상되면 시험관아기시술(IVF) 성공률도 떨어질까?
정자 수와 운동성이 정상이어도 DNA에 손상이 있다면 수정이나 배아 발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특히 반복적인 착상 실패나 유산을 경험한 난임 부부에게 정자 DNA 손상 여부는 중요한 관심사다.
최근 난임 부부 4520쌍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 정자 DNA 손상 정도가 높을수록 정자의 질은 나빠지는 경향을 보였지만, 실제 임신이나 출산 결과까지 반드시 나빠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푸젠성 모자보건병원 연구진은 IVF를 받은 난임 부부의 진료기록을 분석해 정자 DNA 분절화 지수와 수정률, 배아 발달, 임신율, 유산율, 생아출생률 사이의 관계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는 2026년 10월 국제학술지 남성생식의학(Andrology)에 발표됐다.
정자 DNA 손상 높을수록 정자의 질 저하
정자 DNA 분절화 지수(DFI)는 정자 내부의 유전물질인 DNA가 얼마나 손상됐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일반적인 정액검사가 정자의 수와 운동성, 형태를 평가한다면 DNA 분절화 검사는 정자 내부 유전물질의 손상 정도를 확인한다.
연구진은 2018년 6월부터 2025년 1월까지 IVF 또는 난자세포질내정자주입술을 통해 신선배아이식을 진행한 난임 부부 4520쌍의 진료기록을 후향적으로 분석했다.
정자 DNA 분절화 지수가 15% 미만인 집단과 15% 이상인 집단을 비교하고, 남성의 체질량지수에 따른 차이도 함께 살펴봤다.
분석 결과 DNA 분절화 지수가 높은 남성일수록 정자 농도와 총정자 수, 운동성, 정상 형태 정자 비율이 낮은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연관성은 체질량지수가 높은 남성에게서 더욱 두드러졌다.
이는 정자 DNA 손상이 유전물질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정액의 질과도 관련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비만 남성에서는 수정률도 낮아져
이번 연구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남성의 체질량지수에 따라 정자 DNA 손상과 수정 결과의 관계가 달랐다는 점이다.
체질량지수가 높은 남성 집단에서는 DNA 분절화 지수가 높을수록 수정률이 낮아지는 연관성이 관찰됐다. 반면 체질량지수가 낮은 남성 집단에서는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DNA 분절화 지수가 높은 집단에서 오히려 양질의 배아 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이다. 보정 분석에서도 이러한 연관성이 관찰됐지만, 연구진은 해당 집단의 표본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결과를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자 DNA 손상이 배아의 질을 높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연구진은 정자 DNA 손상의 영향이 모든 남성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체질량지수와 같은 신체적 특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DNA 손상 높아도 임신율·출산율 차이 뚜렷하지 않아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결과는 실제 임신과 출산에 관한 분석이다.
연구진은 정자 DNA 분절화 지수와 배반포 형성, 임상적 임신, 유산, 생아출생, 태아 염색체 수 이상, 선천적 결함 사이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정자 DNA 분절화 지수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임상적 임신율이나 생아출생률이 유의하게 낮아진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유산이나 태아 염색체 수 이상, 선천적 결함과의 연관성도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DNA 분절화 지수를 연속적인 수치로 분석하거나 기준을 20%로 변경한 추가 분석에서도 결과는 대체로 일관됐다. 일반적인 IVF와 난자세포질내정자주입술을 구분한 분석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정자 DNA 손상이 정자의 질이나 일부 수정 과정에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 수치 하나만으로 임신과 출산의 성공 여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다만 통계적으로 유의한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서 정자 DNA 손상이 임신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번 연구는 과거 진료기록을 분석한 후향적 관찰연구로, 인과관계를 확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정자 DNA 검사 수치만으로 성공 가능성 판단해선 안 돼
정자 DNA 분절화 검사는 원인 불명의 남성불임이나 반복적인 시술 실패를 평가할 때 관심을 받는 검사다. 그러나 검사 수치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수정에 실패하거나 임신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IVF 결과에는 정자의 상태뿐 아니라 여성의 나이와 난자의 질, 배아의 염색체 상태, 자궁내막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정자 DNA 손상 지표를 해석할 때 남성의 체질량지수와 정액검사 결과, 난임 부부의 임상적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DNA 분절화 지수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임신 가능성을 지나치게 비관하거나 특정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결국 IVF에서 중요한 것은 정자 DNA 검사 수치 하나가 아니라 난자와 정자, 배아 발달, 여성의 생식 환경을 함께 평가하는 일이다. 정자 DNA 손상 검사는 남성 생식능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출산 가능성을 단독으로 예측하는 결정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 이번 연구의 시사점이다.
※ 국제학술지 ‘남성생식의학(Andrology)’ 2026년 10월호에 발표된 ‘정자 DNA 분절화 지수와 신선배아이식 결과의 연관성을 분석한 후향적 코호트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논문 DOI: 10.1111/andr.703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