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의 모양이 비정상적이고 움직임까지 좋지 않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남성불임 검사에서는 정자의 수와 운동성, 형태 등을 평가하지만, 정작 이러한 이상이 왜 발생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최근 정자의 머리와 꼬리에 나타나는 서로 다른 결함이 특정 유전자 변이와 관련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중국 쓰촨대학교 화서제2대학병원 등 공동 연구진은 GALNT3, GALNT8, GALNTL5 등 세 가지 유전자의 병적 변이가 정자의 형태와 운동성 이상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관여할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생식과 불임(Fertility and Sterility)’에 발표됐다.

이번 연구는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남성불임의 일부를 유전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정자 결함의 종류에 따라 관련 유전자가 다르다는 사실을 제시하면서 남성불임의 정밀 진단과 치료 전략 수립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남성 1826명 분석했더니…불임 환자에서 유전자 변이 더 많아

 

연구진은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중국 남서부 지역에서 모집한 남성 1826명의 유전정보를 분석했다. 이 가운데 1148명은 정자의 운동성과 형태에 동시에 이상이 나타나는 정자무력기형증 환자였으며, 나머지 678명은 생식능력이 확인된 남성이었다.

연구진은 전체 엑솜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영역을 조사하고, GALNT 유전자 계열에서 발견된 변이의 특성을 평가했다. 이어 면역형광염색과 전자현미경 관찰을 통해 정자의 미세구조와 단백질 발현 상태를 확인했다.

분석 결과, 불임 남성은 생식능력이 확인된 남성보다 GALNT 계열 유전자 변이를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특히 기능에 해로운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일부 변이는 불임 환자군에서만 발견됐다.

이는 정자의 운동성과 형태 이상이 단순한 생리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특정 유전자의 기능 이상과 관련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GALNT3는 정자 머리, GALNT8은 꼬리…유전자마다 결함 달랐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세 유전자가 서로 다른 정자 구조의 이상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다.

GALNT3 유전자 변이는 정자의 머리가 둥글게 형성되는 원형두부정자증과 연관됐다. 정상 정자의 머리에는 난자와의 수정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첨체가 존재한다. 그러나 원형두부정자증에서는 첨체가 없거나 비정상적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아 수정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GALNT8 유전자 변이는 정자의 꼬리 구조 이상과 관련됐다. 정자 꼬리 내부에는 운동에 필요한 미세소관이 일정한 배열을 이루고 있는데, 해당 변이를 가진 정자에서는 중심부 미세소관 한 쌍이 소실되는 구조적 이상이 관찰됐다. 이러한 결함은 정자가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GALNTL5 유전자 변이는 정자의 머리와 꼬리 모두에서 이상이 나타나는 복합적인 결함과 관련됐다. 정자의 형태뿐 아니라 운동 기능까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제시된 것이다.

연구진은 세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의 분포 위치도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GALNT3 단백질은 주로 첨체에, GALNT8은 꼬리에, GALNTL5는 머리와 꼬리에 분포했다. 변이가 있는 경우 해당 단백질의 발현량이 현저히 감소하거나 검출되지 않는 현상도 관찰됐다.

이러한 결과는 특정 유전자의 기능 이상이 정자의 어느 부위에 결함을 일으키는지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유전자 이상 있어도 미세수정술 결과는 대조군과 비슷

 

남성불임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더라도 임신이 가능한지 여부다.

연구진은 GALNT 유전자 변이를 가진 불임 환자들의 미세수정술 치료 결과도 추적했다. 미세수정술은 정자 한 개를 선택해 난자 세포질 안으로 직접 주입하는 보조생식술로, 정자의 운동성이 떨어지거나 형태에 이상이 있어 일반적인 수정이 어려운 경우 활용된다.

분석 결과, GALNT 유전자 변이를 가진 환자들의 미세수정술 치료 결과는 대조군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자의 구조와 운동 기능에 이상이 있더라도 미세수정술을 통해 수정 과정의 일부 장애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이번 결과가 모든 GALNT 유전자 변이 환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변이의 종류와 정자 결함의 정도에 따라 치료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며, 미세수정술이 유전적 결함 자체를 교정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실제 임신과 출생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원인 불명의 남성불임, 유전자 검사로 진단 범위 넓어질까

 

그동안 남성불임 진료에서는 정액검사를 통해 정자 수와 운동성, 정상 형태 비율 등을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더라도 정확한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존재한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환자 가운데 일부에서 유전자 변이가 정자의 구조적 결함과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GALNT 계열 유전자는 단백질에 당 성분이 결합하는 과정과 관련돼 있다. 이러한 단백질 변형은 세포의 구조와 기능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정자의 형성과 성숙 과정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번 연구는 중국 남서부 지역의 특정 환자군을 대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다른 인구집단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유전자 변이가 발견됐다는 사실만으로 불임의 원인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 임상에서 해당 유전자 검사를 얼마나 폭넓게 적용할 수 있을지도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정자의 운동성과 형태 이상을 단순한 검사 수치가 아니라 분자유전학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

정자가 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지, 왜 머리와 꼬리가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않는지에 대한 답이 일부 남성에게서는 유전자 속에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남성불임 진단은 정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단계를 넘어, 그 결함이 발생한 유전적 원인까지 찾아가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 중국 쓰촨대학교 화서제2대학병원 등 공동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생식과 불임(Fertility and Sterility)’에 발표한 논문 ‘인간 정자무력기형증에서 GALNT3, GALNT8, GALNTL5의 병적 변이와 서로 다른 정자 결함의 연관성(Pathogenic variants in GALNT3, GALNT8, and GALNTL5 are associated with distinct sperm defects in human asthenoteratozoospermia)’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DOI: 10.1016/j.fertnstert.2026.10.009 / PMID: 42892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