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아기시술(IVF)에서 건강한 정자를 골라내는 기술이 한층 정밀해질 전망이다. 반도체 칩처럼 미세한 통로를 이용해 정자를 분리하고, 레이저 빛으로 정자 한 마리의 움직임과 힘까지 측정하는 새로운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호주 시드니대학교와 이탈리아 파비아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미세유체 기술(Microfluidics)과 광학집게(Optical Tweezers)를 활용한 정자 평가 및 선별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Reproduction, Fertility and Development’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기존 연구들을 종합한 문헌고찰로, 두 기술을 결합하면 정자 선별의 정밀도를 높이고 기존 처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원심분리 대신 미세한 통로로 정자 선별
현재 IVF에서는 밀도구배 원심분리법이나 스윔업(Swim-up) 등의 방법을 이용해 운동성이 좋은 정자를 분리한다. 그러나 원심분리 과정에서 정자가 물리적 스트레스를 받거나 활성산소 발생으로 DNA 손상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연구진이 주목한 ‘미세유체 기술’은 머리카락 굵기 수준의 미세한 통로를 통해 극소량의 액체 흐름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방식이다. 정자가 이동하는 통로의 구조와 유체 흐름을 조절해 운동성이 좋은 정자를 분리할 수 있다.
특히 정자의 자연스러운 이동 능력을 활용하기 때문에 기존 원심분리 과정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일부 선행연구에서는 미세유체 방식이 정자의 DNA 손상과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도 제시됐다.
레이저 빛으로 정자 한 마리의 운동력까지 분석
이번 연구에서 주목한 또 다른 기술은 ‘광학집게’다. 광학집게는 집속된 레이저 빛을 이용해 미세한 입자나 세포를 붙잡거나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다. 실제 집게로 정자를 잡는 것이 아니라 빛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힘을 이용한다.
이를 정자 평가에 적용하면 개별 정자의 움직임뿐 아니라 헤엄치는 힘과 운동 특성 등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기존 정액검사가 정자 수와 운동성, 형태 등을 중심으로 평가했다면 광학집게는 정자가 얼마나 강한 힘으로 움직이는지까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연구진은 여기에 라만 분광법과 형광 영상기술 등을 접목하면 정자의 세포 상태와 기능을 더욱 다각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칩에서 정자 분리부터 정밀 분석까지
두 기술을 결합하면 정자를 분리하고 개별 정자의 특성을 분석하는 과정을 하나의 소형 장치에서 수행하는 ‘광유체 칩(Optofluidic chip)’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미세유체 기술이 운동성이 좋은 정자를 분리하는 역할을 맡고, 광학기술이 개별 정자의 운동 특성과 물리적 성질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기술은 향후 시험관아기 시술뿐 아니라 난자 세포질 내 정자주입술(ICSI)에서 사용할 정자를 평가하고 선별하는 데도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정자 수가 적거나 운동성이 떨어지는 남성 난임 환자에게 새로운 정자 평가 방법을 제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다만 정자의 운동성이 좋거나 헤엄치는 힘이 강하다는 사실만으로 수정 능력이나 유전적 정상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정자의 물리적 특성이 실제 배아 발달과 출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정자 선별 정밀도 높아져도 임신 성공률 향상은 미지수
이번 연구는 새로운 정자 선별 장치를 이용해 임신 결과를 비교한 임상시험이 아니다. 기존 미세유체 기술과 광학기술 관련 연구를 검토하고 두 기술의 통합 가능성을 제시한 문헌고찰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술을 적용했을 때 수정률이나 배반포 형성률, 임상적 임신율, 생아출산율이 실제로 높아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기술의 표준화와 비용, 정자 처리 속도, 레이저 사용에 따른 안전성, 실제 배아실에서의 활용 가능성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정자 선별 기술이 단순히 빠르게 움직이는 정자를 골라내는 수준에서 벗어나 개별 정자의 운동 능력과 세포 특성을 정밀하게 평가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IVF에서 배아를 평가하는 기술이 고도화되는 가운데 수정에 사용할 정자 자체를 더욱 정밀하게 선별하려는 연구도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기술이 실제 임신과 출산 성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핵심 연구 과제로 남아 있다.
※ 2026년 10월 국제학술지 ‘생식·수정 및 발달(Reproduction, Fertility and Development)’에 발표된 호주 시드니대학교와 이탈리아 파비아대학교 공동 연구진의 논문 ‘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ies on-chip: the application of microfluidics and optics to sperm assessment and sorting(칩 기반 보조생식기술: 정자 평가 및 선별을 위한 미세유체·광학기술의 적용)’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연구진은 Katherine R. Seymour, Yuze Guo, Melissa Cannarozzo, Daniele Vigolo, Stefano Palomba, Simon P. de Graaf 등이며, 해당 논문은 기존 연구를 종합한 문헌고찰입니다. DOI: 10.1071/RD26043, PMID: 428436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