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도 시험관아기 시술을 통해 임신하고 출산할 수 있을까.
뇌전증이나 다발성경화증처럼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신경계 질환을 진단받은 여성에게 임신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난임 치료 과정에서 사용하는 호르몬제가 뇌질환을 악화시키지는 않을지, 임신 중 발작이나 재발 위험은 없는지, 복용 중인 약물이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연구들은 뇌질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험관아기 시술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다발성경화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최신 메타분석에서는 보조생식술이 질환의 재발 위험을 유의하게 높인다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뇌질환은 종류에 따라 위험과 치료 원칙이 크게 달라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결론을 적용할 수는 없다.
다발성경화증 환자 680명 분석…난임시술이 재발 위험 높이지 않아
최근 국제 의학 학술지에 발표된 ‘다발성경화증 여성의 보조생식술 후 재발 위험에 관한 최신 메타분석’은 이러한 우려를 검토한 연구다.
다발성경화증은 뇌와 척수의 신경을 보호하는 수초가 면역계의 공격을 받아 손상되는 중추신경계 질환이다. 시력 저하, 감각 이상, 근력 약화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증상이 호전됐다가 다시 악화되는 재발을 경험하기도 한다.
연구진은 2026년 5월까지 발표된 12개 연구를 종합했다. 이 가운데 10개 연구는 다발성경화증 환자 680명의 난임시술 후 재발 위험을 평가했고, 나머지 2개 연구는 여성 58만6656명을 대상으로 보조생식술과 새로운 다발성경화증 발생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보조생식술 이후 다발성경화증 재발 위험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증가하지 않았다. 난소 자극 과정에서 사용하는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GnRH) 작용제와 길항제 요법에서도 뚜렷한 위험 증가가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난임시술 후 임신에 성공한 여성은 재발률이 유의하게 낮았으며, 보정 발생률비(aRR)는 0.50이었다. 반면 시술에 실패한 여성은 재발 위험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현대의 보조생식술이 다발성경화증 재발을 독립적으로 증가시킨다는 근거는 부족하다며, 시술 자체를 피하도록 권고하기보다 환자의 질병 활동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임신 성공에 따른 재발률 차이를 임신 자체의 보호 효과로 단정할 수는 없으며, 추가적인 전향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뇌전증 환자도 IVF 출산 가능…발작 조절과 약물 관리 중요
뇌전증 환자의 IVF에 관한 임상 연구도 있다. 뇌전증은 뇌신경세포의 비정상적인 전기적 활동으로 반복적인 발작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2026년 발표된 문헌고찰에서는 뇌전증 여성의 보조생식술과 발작 조절, 항발작제의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에서 확인된 시험관아기 시도 22건 가운데 12건이 임신으로 이어졌으며, 8건에서 생아출산이 보고됐다.
많은 환자가 난임시술 과정에서 발작 악화 없이 치료를 견뎠지만, 항발작제 사용과 난임 치료의 상호작용은 여전히 주의가 필요한 문제로 지적됐다. 연구에 포함된 사례 수가 적어 이 결과를 뇌전증 환자의 일반적인 IVF 성공률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뇌전증 환자가 임신을 준비할 때 중요한 것은 발작을 안정적으로 조절하면서 태아에게 미칠 수 있는 약물 위험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일부 항발작제는 태아의 선천성 기형이나 신경발달 위험과 관련이 있어 임신 전부터 신경과 전문의와 약물 조정을 논의해야 한다.
다만 임신을 계획한다는 이유로 항발작제를 임의로 중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발작이 악화되면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졸중 병력이 있다면…IVF 안전성 아직 불확실
뇌졸중을 경험한 여성은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뇌조직이 손상되는 질환으로, 원인과 후유증에 따라 임신 중 위험이 달라질 수 있다.
2025년 국제학술지 'BMJ Open'에 발표된 연구는 난임 치료와 뇌졸중 위험을 다룬 10개 연구를 검토했다.
연구진은 뇌졸중 생존자의 임신 사례 32건 가운데 시험관아기로 임신한 사례가 1건 확인됐지만, 해당 환자의 뇌졸중 유형과 치료 방법 등에 관한 정보가 부족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뇌졸중 병력이 있는 여성에게 시험관아기 시술이 얼마나 안전한지 확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특히 뇌혈관 기형이나 동맥류, 혈전성 질환,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 등이 동반된 경우에는 난임시술 전 신경과·신경외과 및 고위험산모 전문의의 평가가 중요하다.
뇌질환 환자의 시험관아기, 핵심은 질환의 안정성과 임신 위험
뇌질환 환자의 시험관아기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난자 채취나 배아이식이 가능한지를 판단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난소 자극에 따른 호르몬 변화, 마취나 진정제 사용, 기존 약물과의 상호작용,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까지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미국생식의학회(ASRM) 역시 기저질환으로 임신 위험이 높은 여성에게 난임 치료를 일률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되며, 관련 전문의의 평가와 충분한 상담을 바탕으로 개별적인 치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번 연구들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뇌질환 진단 자체가 시험관아기 시술의 절대적인 금기는 아니다. 그러나 다발성경화증에서 확인된 결과를 뇌전증이나 뇌졸중, 뇌종양 등 다른 질환에 그대로 적용해서도 안 된다.
난임 치료의 목표는 임신에 성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산모의 건강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출산에 이르는 것이다. 뇌질환을 가진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획일적인 시술 제한이 아니라 신경과와 생식의학과, 고위험산모 진료팀이 함께 수립하는 맞춤형 임신 계획이다.
※ 2026년 10월 7일 국제학술지 ‘다발성경화증 및 관련 질환(Multiple Sclerosis and Related Disorders)’에 발표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대학교 Mohamed I. Mohamed 연구진의 메타분석(DOI: 10.1016/j.msard.2026.107965)을 중심으로 작성했습니다. 또한 ‘신경학(Neurology)’의 뇌전증 관련 문헌고찰(2026), ‘BMJ 오픈(BMJ Open)’의 난임 치료와 뇌졸중 연구(2025), 미국생식의학회(ASRM)의 윤리 지침을 참고했습니다. 뇌전증 연구는 학술대회 초록으로, 질환별 근거 수준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