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아기시술(IVF)에서 배아가 자궁에 착상하지 못하거나 임신에 성공하고도 유산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의료계는 배아의 염색체 이상, 자궁내막 상태, 호르몬 변화 등에 주목해 왔다.

그런데 최근 미국 연구진이 출산에 성공한 여성들의 태반에서 또 다른 단서를 발견했다. 반복유산이나 반복착상실패를 경험한 여성의 태반에서 면역세포 분포와 조직학적 변화가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미국 메이요클리닉 연구진은 IVF로 임신한 여성 325명과 자연임신 여성 197명 등 총 522명을 비교 분석했다. 연구 결과, 과거 반복유산이나 반복착상실패를 경험한 여성들에게서 태반의 염증성 변화와 혈류 관련 이상, 특정 면역세포의 증가가 관찰됐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임신에 실패한 여성의 자궁이 아니라 임신을 유지해 출산까지 성공한 여성의 태반을 살펴봤다는 점이다. 과거의 반복적인 임신 실패 이력이 출산 이후 태반의 면역학적 특징과도 연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태반은 영양 공급 기관이자 면역 조절의 중심

 

태반은 태아에게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태반은 산모의 면역체계와 태아가 만나는 중요한 면역학적 경계이기도 하다.

태아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정보를 절반가량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산모의 면역체계가 태아를 무조건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정교한 조절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 관여하는 대표적인 세포가 대식세포다. 대식세포는 손상된 조직이나 불필요한 세포를 제거하고 염증 반응과 조직 회복을 조절하는 면역세포다. 태반에서도 정상적인 조직 발달과 면역환경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CD68과 CD163이라는 표지자를 가진 대식세포였다. CD68은 대식세포를 확인하는 데 널리 사용되는 표지자이며, CD163은 특정 대식세포 집단의 특성을 살펴보는 데 활용된다.

 

반복착상실패 여성, CD163 양성 대식세포 두드러져

 

연구에서 눈에 띄는 결과는 반복착상실패 이력이 있는 여성의 태반에서 CD163 양성 대식세포가 두드러지게 관찰됐다는 사실이다. 반복유산 또는 반복착상실패 이력이 있는 시험관아기 임신에서는 CD68 양성 세포와 CD163 양성 세포의 증가도 확인됐다.

이는 과거 임신 실패를 경험한 여성들의 태반 면역환경이 다른 여성들과 차이를 보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CD163 양성 대식세포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면역체계가 태아를 공격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CD163은 일반적으로 염증 조절이나 조직 회복과 관련된 대식세포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 사용되지만, 실제 기능은 주변 조직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결과는 면역세포 증가 자체가 임신 실패를 일으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반복적인 임신 실패 이력과 특정 태반 면역세포 분포 사이에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태반 혈류 이상과 만성 염증도 관찰

 

면역세포뿐 아니라 태반 조직에서도 차이가 발견됐다. 연구진은 시험관아기 임신에서 태아 측 혈관의 혈류 장애를 시사하는 병변과 만성 융모염, 융모간 혈전 등이 더 자주 나타나는 양상을 확인했다. 특히 반복유산 이력이 있는 여성에서 이러한 변화가 두드러졌다.

만성 융모염은 태반의 융모 조직에 염증세포가 침윤한 상태를 말한다. 융모는 산모와 태아 사이에서 산소와 영양분이 교환되는 중요한 구조다. 이 부위의 염증이나 혈류 장애는 태반 기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임신 합병증에서도 일부 차이가 관찰됐다. 반복유산 이력이 있는 시험관아기 임신군에서는 전자간증 증가 경향이 나타났고, 반복유산이나 반복착상실패 이력이 없는 시험관아기 임신군에서는 산후출혈 발생이 통계적으로 높았다.

반면 염증과 관련된 물질인 인터루킨-6(IL-6) 수치는 집단 간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모든 염증 지표가 일관되게 증가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면역세포가 많다고 면역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번 연구가 반복유산과 반복착상실패 환자에게 곧바로 새로운 면역치료의 필요성을 입증한 것은 아니다.

전체 비교 대상은 522명이었지만 실제 태반 조직검사 자료가 확보된 여성은 283명이었고, 면역조직화학검사가 시행된 검체는 133개였다. 반복유산군은 52명, 반복착상실패군은 30명으로 세부 집단의 규모도 제한적이었다.

무엇보다 출산에 성공한 여성들의 태반을 분석했기 때문에 면역세포 변화가 임신 실패 이전부터 존재했는지, 임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타났는지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CD163이나 CD68 양성 세포의 증가를 근거로 면역억제제, 스테로이드, 면역글로불린 등의 치료 효과를 주장할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태반 면역세포 검사가 반복착상실패의 원인을 진단하거나 치료를 결정하는 표준검사로 확립된 것도 아니다.

 

반복유산 원인 규명, 태반 면역환경이 새로운 단서

 

이번 연구의 의미는 반복유산과 반복착상실패를 배아와 자궁내막의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임신 이후 형성되는 태반의 면역환경까지 살펴봤다는 데 있다.

특히 출산에 성공한 여성에게서도 과거 임신 실패 이력과 연관된 조직학적 차이가 발견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임신이 성공적으로 유지되더라도 태반의 면역세포 분포와 혈관 상태가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러한 결과는 반복유산·반복착상실패 이력이 있는 여성의 임신 중 관리와 태반 건강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한다. 다만 실제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더 큰 규모의 연구와 면역세포의 기능을 확인하는 후속 검증이 필요하다.

반복유산과 반복착상실패의 원인을 찾는 연구가 이제 배아와 자궁내막을 넘어 태반의 면역세포와 미세혈관 환경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임신 실패의 원인을 확정한 결과가 아니라, 그동안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던 생식면역학적 연결고리를 탐색할 새로운 단서를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 미국 메이요클리닉(Mayo Clinic) 산부인과·생식내분비 및 난임 분야의 SiWon Lee, SuYun Ling, Jade Rechtzigel, Chandra C. Paff Shenoy, Sylvie Girard 연구진이 2026년 10월 8일 국제학술지 ‘F&S 사이언스(F&S Science)’에 발표한 논문 ‘반복유산 또는 반복착상실패 이력이 있는 시험관아기 시술 환자의 임신 결과, 태반 조직병리 및 면역조직화학(Pregnancy Outcomes, Placenta Histopathology and Immunohistochemistry in Patients with a History of Recurrent Pregnancy Loss or Implantation Failure Undergoing In Vitro Fertilization)’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DOI: 10.1016/j.xfss.2026.09.004, PMID: 42849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