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아기 시술(IVF)에서 정자를 어떤 방법으로 선별하느냐에 따라 정자의 DNA 손상 관련 지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존에 널리 사용해 온 원심분리 방식보다 새로운 정자 선별 기술을 이용했을 때 DNA 손상과 관련된 신호가 관찰되는 정자의 비율이 낮게 나타난 것이다.
정자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모양이 정상적이라고 해서 내부 유전물질까지 건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일반적인 정액검사에서 정자 수와 운동성, 형태가 정상 범위에 있더라도 DNA 손상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6년 10월 2일 국제학술지 ‘JBRA 생식보조의학(JBRA Assisted Reproduction)’에 발표된 연구는 이러한 문제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기존 밀도구배원심분리법과 새로운 정자 선별 기술인 자이모트(ZyMōt), 펠릭스(Felix)를 비교해 정자의 DNA 손상 관련 지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했다.
정자 선별 방법에 따라 DNA 손상 지표 달라져
시험관아기 시술에서는 남성에게서 채취한 정액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에 적합한 정자를 골라내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널리 사용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밀도구배원심분리법(DGC)이다.
밀도가 서로 다른 용액에 정액을 넣고 빠르게 회전시켜 정자를 분리하는 방식이다. 비교적 많은 정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원심분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화스트레스가 정자의 유전물질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제기돼 왔다.
산화스트레스란 세포 내부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 등이 세포 기능이나 DNA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 원심분리 과정을 거치지 않는 정자 선별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자이모트’는 미세한 통로를 스스로 통과하는 정자를 분리하는 기술이다. 정자의 운동 능력을 이용해 수정에 적합한 정자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펠릭스’는 전기영동 원리를 활용해 정자를 분리하는 기술이다. 두 방법 모두 기존 원심분리법과는 다른 원리로 정자를 선별한다.
DNA 손상 관련 표지자, 기존 16.0%에서 10.0%까지 낮아져
연구진은 2025년 1월부터 6월까지 확보한 신선 정액 검체 15개를 대상으로 세 가지 정자 선별 방법을 비교했다.
정자의 DNA 손상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사용한 지표는 ‘감마 H2AX(γH2AX)’라는 단백질 표지자다. DNA의 두 가닥이 모두 끊어지는 손상과 관련된 세포 반응을 확인하는 데 활용되는 지표다.
연구진은 각 검체에서 최소 200개의 정자를 관찰해 이 표지자가 나타나는 비율을 분석했다.
그 결과 기존 밀도구배원심분리법으로 선별한 정자에서는 DNA 손상 관련 표지자 양성률이 16.0%로 나타났다.
반면 자이모트를 이용한 정자에서는 11.8%, 펠릭스를 이용한 정자에서는 10.0%로 낮아졌다.
기존 원심분리법과 비교하면 자이모트는 4.2%포인트, 펠릭스는 6.0%포인트 낮은 수치다. 두 기술 모두 기존 방식보다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낮은 결과를 보였다.
다만 이 수치는 실제 DNA 절단을 직접 측정한 비율이 아니라 DNA 손상과 관련된 단백질 표지자가 관찰된 비율이다. 따라서 새로운 선별 기술이 이미 손상된 DNA를 복구하거나 DNA 손상 자체를 해당 비율만큼 줄였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정자 회수율은 원심분리, 운동성은 자이모트가 유리
흥미로운 점은 DNA 손상 관련 지표가 낮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가장 우수한 정자 선별 방법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이 정자 회수율과 운동성, 처리 시간을 함께 비교한 결과 각 기술의 장점은 서로 달랐다.
기존 밀도구배원심분리법은 세 가지 방법 가운데 정자 회수율이 가장 높았다. 수정에 사용할 수 있는 정자를 상대적으로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자이모트는 선별된 정자의 전체 운동성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보였다. 반면 펠릭스는 정자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가장 짧았다.
이는 환자의 정자 상태와 시술 목적에 따라 적합한 선별 방법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정자 수가 매우 적은 남성에서는 DNA 손상 관련 지표뿐 아니라 실제 수정에 사용할 정자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어느 한 기술이 모든 남성난임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정자 DNA 손상 적으면 임신 성공률도 높아질까
정자 DNA 손상은 남성난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연구 분야다. 일반적인 정액검사에서는 정자의 수와 운동성, 형태 등을 평가하지만 정자 내부의 유전물질이 얼마나 온전한지까지 충분히 확인하기는 어렵다.
정자 DNA 손상은 수정 이후 배아 발달과 임신 결과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 관련 검사와 선별 기술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부분이 있다.
연구진이 확인한 것은 정자 선별 후 DNA 손상 관련 표지자의 차이이지, 실제 임신 성공률이나 출산율의 차이가 아니다.
연구에 사용된 정액 검체도 15개로 비교적 적었다. 선별된 정자로 수정한 배아의 발달률이나 착상률, 임신율, 유산율, 생아출산율은 평가하지 않았다.
또한 원심분리 과정이 직접 DNA 손상을 증가시킨 것인지, 아니면 선별 방식에 따라 원래 DNA 손상 신호가 적은 정자가 더 많이 선택된 것인지도 이번 연구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다.
자이모트와 펠릭스 가운데 어느 기술이 실제 임신 결과에서 더 우수한지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IVF에서 정자 선별, 운동성 넘어 DNA 건강까지 고려해야
이번 연구는 정자 선별 기술을 평가할 때 단순히 정자가 얼마나 잘 움직이는지뿐 아니라 내부 유전물질의 건강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미세수정(ICSI)은 난자에 정자 한 개를 직접 주입하는 시술인 만큼 어떤 정자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다만 정자 DNA 손상이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난임 부부에게 새로운 정자 선별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자 수와 운동성, 난임 원인, 과거 시술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반복적인 수정 실패나 배아 발달 문제를 경험한 부부에서도 특정 정자 선별 기술이 임신율이나 출산율을 높인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새로운 정자 선별 기술이 기존 방법보다 DNA 손상 관련 지표가 낮은 정자를 확보하는 데 유리할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데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난임 부부를 대상으로 실제 수정률과 배아 발달률, 임신율, 생아출산율까지 비교하는 임상연구가 필요하다.
정자 선별 기술은 이제 단순히 더 많은 정자, 더 잘 움직이는 정자를 확보하는 수준을 넘어 수정에 사용할 정자의 유전적 건강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 일본 연구진이 2026년 10월 2일 국제학술지 ‘JBRA 생식보조의학(JBRA Assisted Reproduction)’에 발표한 밀도구배원심분리법, 자이모트(ZyMōt), 펠릭스(Felix)를 이용한 인간 정자 선별 후 DNA 이중가닥 손상 관련 지표를 비교한 연구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논문 DOI는 10.5935/1518-0557.20260078이며, 원문은 DOI 공식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